[단독] 그날 국회엔 ‘비상계엄 대응 매뉴얼’이 없었다 [계엄 해제, 두 번의 기적은 없다①]

[단독] 그날 국회엔 ‘비상계엄 대응 매뉴얼’이 없었다 [계엄 해제, 두 번의 기적은 없다①]

국회 사무처도 국회 경비대도 ‘계엄 대응 매뉴얼’ 전무
비상상황 대비 을지훈련은 요식행위 그쳐
“국회, 비상상황에 취약한 구조…후속조치 마련해야”

기사승인 2025-03-04 06:05:05 업데이트 2025-03-04 08:46:23
그날로부터 3달이 지났다. 국회 관계자들은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에서 계엄 해제안이 153분 만에 의결된 일을 ‘기적’이라 돌아본다. 당시 국회 내부의 대응이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가중요시설인 국회는 계엄과 전시 등 비상상황에서 또다시 가장 먼저 타격받을 위험이 크다.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더 안전한 국회를 만들려면 어떤 대비책이 필요할까. 쿠키뉴스가 당시 국회에서 비상계엄을 경험한 국회의원, 국회 보좌진, 당직자들의 증언을 모아 3편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자정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2문 앞에서 경찰들이 출입문을 통제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12.3 계엄 사태 당시 국회 경비대가 국회의원 진입을 막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된 배경에 ‘비상계엄 대응 매뉴얼’의 부재가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앞으로 계엄, 전시 등 비상상황이 다시 발생할 경우 국회가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다양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쿠키뉴스 취재 결과 국가보안시설인 국회 사무처와 국회 경비대, 합동참모본부엔 비상계엄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 경비대가 소속돼 있는 서울경찰청은 “비상계엄 관련 매뉴얼이 없으며, 관련 훈련도 실시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간 국회 경비대가 실시한 자체훈련은 차량 강습이나 월담 대비, 국회 내 기습시위와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초동조치 뿐이었다. 서미화 의원실을 통해 제출 받은 자료를 보면, 국회 사무처 역시 비상계엄 시 국회가 대응할 수 있는 별도의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매뉴얼 부재는 경찰의 혼란스러운 국회 통제로 이어졌다. 계엄 당시 국회를 통제하던 국회 경비대는 출입증이 있는 국회의원과 보좌진만 제한적으로 들여보내주다가 다시 모든 인원을 통제하는 오락가락 대응을 반복했다. 정해진 규율에 의거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출입문 담당 경비대원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출입 가능 여부가 달라진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해 12월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휘관이 출입을 막으라고 명령했지만, 일부 젊은 경찰관들은 ‘국회의원이면 들여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이며 동요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자정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2문 앞에서 경찰들이 경계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현장에 있었던 이들 사이에서도 “매뉴얼의 부재가 일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담장 앞에서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도왔던 송은현 조국혁신당 주임은 “국회 경비대도 혼란스러워 보였다”며 “사람들을 몸으로 막으려고 했지만, 국회의원이 넘어가면 못 본 척 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매뉴얼이 있었다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국회의원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라고 돌아봤다.

이는 단순히 지시 체계의 문제, 혹은 법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으로 볼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국회의 안전 확보와 국회의원의 신변 보호가 주된 업무인 국회 경비대가 오히려 입법부의 기능을 방해한 것이다. 실제로 ‘경찰의 벽’에 막혀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에 참석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이 속출했다. 이는 비상계엄 하에서도 국회의원의 활동을 보장하도록 하는 헌법 77조3항에 위배된다.

매뉴얼 부재 등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대응 시스템은 개인 판단에 의존한 무조건적인 지시 이행으로 이어졌고, 결국 입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 지난해 12월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목현태 국회 경비대장(총경)은 “상명하복에 충실한 경찰관으로서 대통령의 엄중한 계엄령에 의해 내려진 지시를 듣고, 그 지시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고 항변했다.

비상상황에서 국가중요시설인 국회 방호를 지원할 책임이 있는 군대도 대응 계획이 부실한 건 마찬가지였다. 합동참모본부가 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합참 민군작전부는 계엄법에 명시된 ‘전쟁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상황’에서 국가중요시설에 대한 군 방호업무 등의 대응 매뉴얼과 시나리오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시, 계엄 등 비상상황 발생 가능성을 분석한 군 자체 보고서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합참 관계자는 “통합방위법에 근거해 시설 관리자에 의해 국가중요시설에 대한 시설별 자체 방호계획을 수립하게 돼 있다”면서 “군은 요청 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명했다.

군사 전문가는 군에 비상계엄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것에 대해 “말도 안 된다”며 개선 필요성을 피력했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군 부대는 유사 시 국가중요시설에 대한 방호나 경계 임무를 수행한다”며 “통상 매뉴얼이나 부대관리훈령 또는 관련 임무를 수행하게 될 지정된 전담 부대에는 최소한의 임무수행철 정도는 구비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일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번 비상계엄을 통해 우리 군과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그리고 합동참모본부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고 국가중요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군·경찰이 비상계엄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훈련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국가 비상사태 대비 을지훈련, “출석 버튼만 누르면 끝”


국회가 국가 비상사태 발생을 대비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고 있는 을지훈련이 비상계엄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회 사무처가 본지에 전달한 답변서에 따르면 국회는 전시 혹은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입법 활동 등 본질적인 기능을 차질 없이 유지하기 위해 매년 을지훈련 및 민방위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8월 넷째주에 실시되는 을지훈련은 △비상 소집 △비상 시 기본 임무 확인 △비상 전환 절차 △사태별 조치사항과 같은 전시 임무카드 숙지 등을 교육한다. 

하지만 실제 비상상황에선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복수의 국회 보좌진 취재 결과, 을지연습은 일정 시간 내 출석 버튼만 누르면 이수되는 등 체계적인 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진은 “아침 일찍 나와 출석 버튼을 누르면 되는 식이다. 심지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출석이 가능하다”라며 “개인별로 배정된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출석이 인정되는 구조라, 당번 한 명이 도맡아 의원실 전체 인원의 출석체크를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 보좌진도 “을지연습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고 지나갈 때도 많다”면서 “행정안전부와 소통한 결과, 을지연습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점검하기 위해 국회에 별도로 배정되는 인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유일한 기관인 국회가 제2의 계엄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후속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는 “현재 국회는 계엄 등 비상상황에 취약한 구조”라며 “국회 비상상황 대응 매뉴얼을 단계별로 구축하고, 국회 사무처의 지휘를 받는 국회 방호원에 대한 매뉴얼과 임무 조직을 완전히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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