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3일 국회에 있던 이들은 153분 만에 이뤄진 계엄 해제안 의결을 ‘기적’으로 기억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지만, 그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당시 계엄군은 통일된 지휘 체계 아래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으나 국회 내부는 혼란 그 자체였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만약 혼란 상태가 조금만 더 지속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땐 가능했지만 다음엔 어려울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국회를 감돈다. 국가중요기관인 국회가 계엄 같은 비상사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사전에 대비하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공통된 매뉴얼을 만들고, 사전 훈련이 잘 이뤄지는지 점검하고,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방법이 거론된다.

“몰라서 용감했다” 다시 쓰는 그날의 기록
12월3일 10시28분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계엄 선포 직후, 전 국민의 시선이 국회로 향했다. 대한민국 헌법상 유일하게 계엄 해제 요구권을 가진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당직자 등 다수의 국회 관계자들이 국회로 이동해 대처한 결과, 153분 만에 비상계엄 해제안을 의결했다.
국회의 발 빠른 대처가 큰 주목을 받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국회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비상계엄에 대응하는 국회 내 공통 매뉴얼이 부재해 상당 시간 동안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계엄, 전시 등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았으면 해제안 의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동료들이 다치지 않았을 거라며 아쉬워하는 반응이었다.

계엄군이 지휘 계통에 따라 국회 양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동안 국회 관계자들은 각개전투식으로 대처하기 바빴다. 뚜렷한 지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4일 오전 12시10분쯤 국회 본청 안에서 보좌진들과 인간 띠를 만들었던 박성준 의원실 소속 유다현 비서관은 “2시간가량 스크럼을 짜면서 계엄군이 가까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 봤지만, 배운 적이 없어 대응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무장한 군인을 보고 머리가 하얘졌지만 운동권 출신, 혹은 ‘동물국회’를 경험했던 선배 보좌진·당직자들의 지시를 따랐다. 유 비서관은 “선배들이 하는 지시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했다”라며 “그땐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도 안 됐다. 몰라서 용감했던 것 같다”고 했다.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할 당시 본청 내부에서 온몸으로 문을 막았던 한 운영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진 A씨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고 돌아봤다. 4일 12시45분쯤 계엄군이 국회 로텐더홀까지 진입하면서 국회 관계자들의 혼란은 더 커졌다. 일부는 계엄군과 맞서 싸웠지만, 대응 지침이 따로 없어 대부분 본능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A씨는 “내부에서 지시하는 사람이 따로 없어서, 누군가 ‘저 문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면 우르르 몰려가는 식이었다”라며 “많은 이들이 뒤엉키다 보니 넘어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계엄 선포 직후, 정당이나 의원실마다 대응하는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집에 있어야 한다’, ‘당사에 모여야 한다’, ‘본청이나 의원회관 앞에 집결해야 한다’ 등 여러 의견이 오갔다. 보좌진, 당직자들은 소속 정당과 의원의 개별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송은현 조국혁신당 주임은 “계엄 선포 직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며 “국회 본회의장으로 가야 한다는 최소한의 매뉴얼이라도 있었다면 더 많은 의원이 표결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가 입법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국회 경비대도 국회의원의 국회 진입을 막는 등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4일 오전 12시30분쯤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맨몸으로 무장한 계엄군에 맞서게 된 것도 이 같은 혼란의 영향이 컸다. 계엄군에 어떻게 대응할지 통일된 매뉴얼이나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이 온 몸을 던져야 했던 것이다. 안 대변인은 지난 1월8일 진행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계엄군의 총구가 조준되는 걸 제지하는 과정에서 총구를 움켜쥐었다”고 설명했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를 모으자 “총기 탈취 시도로 받아들여지면 원칙적으로 군인이 발포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안 대변인은 “당시 머릿속엔 ‘이 문이 뚫리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라며 “계엄을 합법적으로 막을 곳은 국회뿐이라 반드시 막아야 했다”라고 회상했다.
일부는 비상상황이 다시 일어났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A씨는 “계엄군과 마주하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라고 토로했고, 무장 군인과 대치했던 안귀령 대변인은 “지금도 군인에게 쫓기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그때는 막았다고 해도…”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번 계엄에서도 나타났듯, 계엄해제 요구권을 가진 국회 같은 국가중요시설은 비상상황 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위험이 높다. 하지만 비상상황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 제작이나 교육 등 국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은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다. 최근 국회의장 직속 의회경찰을 신설하는 국회법이 발의되는 등 변화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지만, 사실상 각자가 알아서 비상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실정이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엄 이후 직접 방검복과 방탄복을 구비했다. 방검복을 착용한 상태로 지난 1월16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그는 “제2의 계엄 사태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언제 어디서 공격 받을지 모르니 방검복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전 대비 여부는 차이가 크다”며 “이번 계엄도 그전부터 예고됐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재빨리 집결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 외에도 의원실이나 개인 차원에서 비상상황에 대비한 물품을 구비하고 있다. 유다현 비서관은 “계엄 이후 우리 의원실에선 비상식량, 물을 상시 가득 채워놓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도 위생용품, 세면도구, 갈아입을 옷 등을 챙긴 ‘계엄 키트’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날 이후 비상계엄 선포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이 있나 찾아봤는데 없었다”면서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그날처럼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혼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가중요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헌법이나 비상계엄 시 대응법을 교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비서관 B씨는 “최근의 비상계엄을 인생에 한 번 있는 특수한 일이라고 넘길 것이 아니다. 이번에 막지 못했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이제 비상상황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됐다. 계엄이 선포됐을 때 나의 자유가 어디까지 제한받고, 어떤 지시가 합당한지 등을 알 수 있는 헌법 교육이나 대처 요령을 담은 매뉴얼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날로부터 3달이 지났다. 국회 관계자들은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에서 계엄 해제안이 153분 만에 의결된 일을 ‘기적’이라 돌아본다. 당시 국회 내부의 대응이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가중요시설인 국회는 계엄과 전시 등 비상상황에서 또다시 가장 먼저 타격받을 위험이 크다.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더 안전한 국회를 만들려면 어떤 대비책이 필요할까. 쿠키뉴스가 당시 국회에서 비상계엄을 경험한 국회의원, 국회 보좌진, 당직자들의 증언을 모아 3편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