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선도함 건조 주체 선정이 다시 보류됨에 따라 국가 안보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KDDX 사업은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으로 사업비만 7조8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7일 방위사업청은 사업분과위원회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방식과 관련해 △수의계약 △경쟁입찰 △양사 공동 설계 등 3가지 방안을 놓고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은 지난달 20일 HD현대와 한화오션에 각각 서한을 보내 직접 입장을 표명했다.
양 총장은 “주요 함정의 전력화 시기 지연 상황에 대해 큰 우려가 있다”며 “대한민국은 해양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다. 해군의 핵심 전력들이 적기에 확보되도록 많은 관심과 노력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국가 안보를 위해 더는 도입을 늦출 수 없는 만큼 대승적 차원의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수주 사업을 두고 한화오션과 경쟁하고 있는 HD현대는 “그동안 기업의 입장은 충분히 전달된 만큼, 이제는 규정과 원칙에 따라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한화오션 측은 “당사는 KDDX 사업의 경쟁입찰 방식이 원칙”이라며 “다만 전력화 지연 우려 극복, K-해양방산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한 공동계약 방안에 대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안보가 걸린 전력 사업이 기업들의 이전투구로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뼈아픈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팀장은 “동맹 관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요 산업이 늦어질수록 해군의 모든 전략 방향이 바뀌는 것”이라며 “구형 함정은 도태될 전력이기 때문에 많은 정비가 필요하고 연쇄적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KDDX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면 향후 글로벌 이지스함 수주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어 자존심 대결을 벌여왔다”며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사측의 주장이 우선 되는 것은 적절한 모습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현재 노후화된 함정의 비중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3년부터 취역을 시작한 KDX-II 구축함은 지난 20여년간 영해 수호 및 아덴만 여명작전 등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해군 핵심 전력이다. KDX-II급 1번함의 선령은 22년이 넘었고, 마지막 함정도 17년이 됐다.
이로인해 KDX-Ⅱ의 전투체계는 노후화로 셧다운이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체계가 셧다운되면 KDX-Ⅱ의 주력 함대공 무기인 SM-2 미사일을 쓸 수 없어 대공전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KDX-Ⅱ 구축함은 총 6척인데, 지난 2018년 조사 당시 평균 셧다운 건수는 1.4일당 1회로 2013년(5.2일당 1회) 대비 3.8배 증가했다.
이번 안건 보류가 방사청의 책임감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현 사태의 핵심은 공무원의 부작위와 정부의 실패”라며 “신규 함정 건조가 하루 빨리 이루어져 해군력의 공백을 없애야 하는데 사업자 결정 방식이 지연됨에 따라 도태 함정을 대체할 신규 함정 전력화 사업이 순연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방위사업청 사업자 선정방식이 방산업계의 혼란과 갈등을 깊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부의 실패”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다음달 중순경의 방추위 결정을 새 정부가 어디까지 책임을 질 수 있을지를 놓고 현 정부 관계자들의 숙고가 필요한 상황”고 덧붙였다.
송방원 우리방산 연구회 회장은 “KDDX 사업자 선정이 1년 지연되면서 해군은 노후화된 선박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시기가 늦춰진 만큼 해군의 전력 증강 및 유지 측면에서 계획 수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회장은 “결국 수의계약으로 결정하게 된다면 두 기업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하고 국가사업만 지연된 것”이라며 “방사청이 책임감을 갖고 KDDX 사업이 더 이상 지연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 관계자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인 데 따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외부 위원 중 6명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다음 달 2일 예정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전 다시 사업분과위원회를 소집하고 사업 추진 방식을 정할 방침”이라며 “방사청은 해군의 의견에 따라 전력화 및 해군 증강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