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 NCT 도영, 힙합 그룹 다이나믹 듀오, 밴드 루시…. 국내 가수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이들이 황당하게도 ‘재즈’로 묶였다. 뛰어난 접근성, 공원 특유의 분위기 등 개최 장소 이점에 얹혀 가는 것도 모자라, 그저 물량공세에 힘쓴 모양새다. 상술한 세 가수가 ‘서울재즈페스티벌 2025’(제작 프라이빗커브, 주최 프라이빗커브·카카오엔터테인먼트·국민체육진흥공단·SBS)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대목이 그 방증이다.
“재즈요? 내 아이돌 보러 왔는데요?”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이 모씨는 지난달 30일 1일 차 공연만을 보기 위해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을 찾았다고 했다. 정확히는 KSPO돔에서 열린 루시의 70분 공연만이 목적이었다고 털어놨다. “전 사실 루시 공연만 보면 다 본 거긴 해서요. 재즈요? 같은 곳에서 또 다른 재즈 가수가 나왔다면 이어 봤을 것 같긴 한데, 글쎄요.”
이 씨 같은 관객에게는 ‘내 가수’를 볼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지만, ‘재즈’라는 장르를 내걸고 하는 페스티벌 입장에서는 다소 망신스러운 현실이다. 이날 체감상 가장 붐빈 장소 역시 KSPO돔이었다. 이 공연장에서는 바우터 하멜, 우미, 루시, 잔나비, 레이니가 노래했다. 금요일 오후 1시에 무대에 오른 바우터 하멜을 제외하면, 모두 재즈와 거리가 먼 아티스트들이다. 인지도에 따른 배치는 여타 페스티벌도 그러하지만, 아무래도 이름값을 못 해 우스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헤드라이너는 미국 밴드 레이니였지만, 행사 정체성에 걸맞은 진짜 헤드라이너는 카마시 워싱턴이었다. 그러나 재즈에 큰 애정이 있지 않는 이상, 온전히 그의 무대에 올인하기에는 타임테이블이 받쳐주지 않았다. 잔나비(KSPO돔), 에픽하이(SK핸드볼경기장) 등 대중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팀들의 공연이 카마시 워싱턴이 배정받은 시간과 맞물린 탓이다. 실제로 기민하게 움직여봤지만 한꺼번에 몰린 인파를 맞닥뜨려야 했고, 한참 돌아서 당도한 입구를 통과한 후 돗자리로 빼곡한 88잔디마당에서 몸 누일 곳을 찾다 보니 어느덧 레이니를 보러 가야 할 시간이 됐다.
재즈냐, 록이냐, 힙합이냐, 이는 보는 사람의 선택과 집중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제작사이자 주최사인 프라이빗커브의 게으르고 안일한 태도다. 공연장, 타임테이블 등을 조정해 타 장르를 즐기러 온 관객에게도 재즈를 접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주최 측은 정체성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물론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아닌 ‘서울페스티벌’이었다면, 이처럼 특색 없는 중구난방 라인업은 오히려 칭찬받을 점이다.

다회용기만 가져오라며…제로웨이스트 ‘내로남불’
F&B 부스에서 주문한 요리가 일회용품에 담겨 나왔다. 바비큐와 볶음밥을 떠먹을 스포크, 16oz 생맥주를 따른 컵 모두 플라스틱이었다. 어떤 공연장이든 들어설 때마다 가방을 활짝 열고 봉지 과자도 캔 음료도 없다고 증명해야만 했는데, ‘이건 좀 불공평한데?’라는 생각이 치밀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처 다회용기에 싸 오지 못한 외부 음식물은 검색대 위 일회용 컵이나 투명 비닐에 담아야만 했다. 덕분에 기존 포장지에 새 포장지까지, 쓰레기는 두 배로 늘어났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운영 방식에 환경을 볼모로 F&B 부스 이용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이 첫 페스티벌 참여라는 20대 여성 김 모씨는 “컵도 일회용품 아니냐. 환경 보호 목적이라면 공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음식을 먹는 공간 옆에는 쓰레기통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별다른 표시는 없었다. 이에 분리수거는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다. 분리수거만 안 됐다면 다행이었을 터다. 모두 일반 쓰레기통인 데다 음식물 쓰레기통 위치에 대한 별다른 안내도 없어, 쓰레기통은 이미 잔반이 담긴 종이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역시 친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시민들의 도덕성과 준비성에 의존하는 안이한 운영
사실 첫인상부터 썩 좋지 않았다. 주말이 아닌 금요일 낮임에도 입장 줄은 상당히 길었다. 얼마나 길었냐 하면, 주최 측이 준비한 펜스를 넘어서 아무렇게나 지그재그로 선 줄이 겹겹이 쌓일 정도였다. 관객이 많았다기엔 평일이었다. 주말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 텐데, 펜스가 턱없이 부족한 까닭이 궁금했다.
줄을 관리하는 인원도 펜스만큼이나 적었다. 대부분 대형 행사에는 이러한 경우 간이 펜스가 추가로 설치되지만, ‘서울재즈페스티벌’은 그렇지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을 두 명 남짓의 스태프가 아무런 말 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다행히 질서가 잘 지켜져 입장 중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으나, 분명 우려가 되는 지점이었다.
이 가운데 입장팔찌는 모바일티켓과 예매자 신분증 확인 후 수령할 수 있었는데, 이 절차가 진행되는 속도가 매우 더뎠다. 가림막 하나 없이 28도 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 30분을 대기한 후에야 펜스가 있는 줄에 합류할 수 있었다.
좌우 빈 좌석이 없도록 착석하기, 공연장 내 자리 맡아두지 않기 등 기본적인 유의 사항도 지켜지지 않았다. 전자는 이를 주지시킬 스태프가 곳곳에 없었던 탓이고, 후자는 허울뿐인 경고 스티커를 짐에 붙이고 마는 식이라 전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행사의 본질에서 벗어나 그럴싸한 아티스트와 스폰서 섭외에만 치중하고, 그 밖의 운영은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진다는 인상을 행사 내내 지우기 어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