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그의 예술 속에 담아냈다. 모델을 고용할 형편이 안 되었기에, 그는 자신을 둘러싼 친숙한 얼굴들을 화폭 위에 새겼다.
조셉-미셀 지누는 아를의 라마르틴 거리(Place Lamartine)에 자리한 카페 드 라 가르(Café de la Gare)를 운영하며, 한때 빈센트가 머물렀던 공간의 주인이기도 했다. 노란 집으로 이사하기 전, 빈센트는 그의 카페에서 방을 빌려 새로운 삶을 준비하던 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고갱이 아를에 도착하자 지누와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지누 부인은 고갱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말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모델이 되었다. 그녀에게 초상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남길 수 있는 기회였다.
빈센트는 그녀가 단순한 카페의 안주인이 아니라, 더욱 고귀한 존재로 보이길 바랐다. 그래서 초록빛 테이블 위에 책 두 권을 올려놓아 그녀의 지성을 강조했고, 마치 상류층 여인처럼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의 이런 접근은 우체국 직원 조셉 룰랭(Joseph Roulin)과 그의 아내 오거스틴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순한 초상화에 머무르지 않고, 여름 꽃이 가득한 배경을 그려 넣으며 그들의 삶을 더욱 따뜻하고 깊이 있게 표현했다.
빈센트에게 초상화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본질을 담아내는 예술의 과정이었다. 그의 붓끝에서 피어난 색과 형태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그들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깃든 시간의 흔적이었다.

빈센트는 생 폴 드 무졸 요양원에서 머무는 동안, 폴 고갱이 그린 지누 부인의 초상에서 영감을 받아 연작으로 다섯 점의 지누 부인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는 붓을 들 때마다 단순한 모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과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속에서 감독은 이 순간을 빈센트와 고갱의 예술적 교감을 담아낸 장면으로 표현했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갱을 바라보던 빈센트가 급히 캔버스를 옮겨와 지누 부인을 그리기 시작하는 모습은, 그가 동료의 예술적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자신의 방식으로 녹여내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누 부인이 빈센트를 보고 순간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그것은 그녀의 시선이 이미 고갱에게로 향했다는 미묘한 암시였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영화 속 빈센트의 그림을 직접 그려내며, 그의 예술 세계를 더욱 깊이 탐구했다. 그는 이미 <바스키아, 화가>를 연출하며 화가들의 내면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던 감독이었다. 그래서인지, 슈나벨이 그려낸 빈센트의 삶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그의 정신과 열정을 온전히 담아낸 여정처럼 느껴졌다.
2020년 한국에서 열린 바스키아 전시회에서, 슈나벨의 얼굴이 그려진 도자기 접시를 마주했을 때—그 순간의 반가움은 마치 바스키아와 슈나벨의 예술의 교류 속에서 다시금 그들과 마주한 듯했다. 그는 단순한 감독이 아니라, 화가로서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밤의 카페 아를>은 빈센트가 사랑하고 신뢰했던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하다.
왼편 구석에는 빨간 모자를 쓴 이탈리아 군인 외젠 밀리에가 자리하고 있다. 그의 곁에는 우체국 직원 조셉 룰랭이 앉아 있다. 긴 수염을 기른 룰랭은 퇴근 후 늘 이곳을 찾아 한잔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전면에는 지누 부인이 압생트 잔을 앞에 두고, 눈가에 애정을 머금은 채 고갱을 바라보고 있다.
1890년 1월 19일, 빈센트는 아를의 카페 주인 지누 가족을 찾아갔다. 지누 가족은 여전히 그와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누 부인의 정신 건강 역시 악화된 상태였다. 이틀 후, 빈센트 자신도 또다시 신경 쇠약을 겪었다.
회복 기간 동안 그는 고갱의 작품을 바탕으로 지누 부인의 초상화 시리즈, 아를의 여인을 그렸다.
그는 ‘파리지엔느’와는 다른 표현을 원했다. 도시의 인공적이고 건강에 해로운 삶과, 때묻지 않은 자연 속 건강한 삶을 강렬하게 대비시키고 싶었다. 이를 위해 그는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e) 기법을 활용해, 윤곽선을 강조하고 감정의 색으로 화면을 채웠다.
그 작품을 본 고갱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매우 아름답고, 매우 놀랍군. 내 그림보다도 더욱 마음에 든다!"
그 순간 이후, 빈센트는 지누 가족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붓 끝에 남겨진 시간은 여전히 빛을 머금고 있다. 화폭에 담긴 얼굴들 속에서, 빈센트는 떠나간 시간과 남겨진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했다.

빈센트가 화폭에 담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감상이나 우울함이 아닌, 깊고도 격렬한 고뇌였다. 그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이 화가는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있는가, 그의 고뇌가 얼마나 격렬한가”라는 말을 끌어내고 싶었다.
흔히들 그의 붓질을 거칠다고 평하지만, 바로 그 거친 붓질이야 말로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는 힘이었다. 그의 그림은 다듬어지지 않은 선과 색채 속에서 절박한 감정을 드러냈고, 그 거칠고도 강렬한 표현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자아냈다.
그는 그 경지에 이르는 것이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숙명이었다. 예술은 끈질긴 몰두와 끊임없는 탐구를 요구하며, 때로는 세상의 시선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빈센트는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온 마음을 그림에 쏟아부었다.
“동생아, 나에게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안에, 아니 어쩌면 지금부터라도 네 모든 희생에 걸맞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념은 누구보다 강했고, 그 신념이 그의 붓을 움직였다. 빈센트의 작품은 그의 영혼의 울림이었고, 그의 고통과 열망이 그대로 스며든 조각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그의 붓질이 품은 그 강렬함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닌, 삶과 존재에 대한 뜨거운 고백이었다.

“나는 다른 이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팍한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지위를 얻지 못할 사람… 한마디로 최하층의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언젠가 내 작품을 통해 이 기이한 존재, 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지닌 마음의 깊이를 보여주겠다.”
이것이 빈센트의 야망이었다. 하지만 그 야망은 원한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열정은 불타올랐지만, 그 속에는 묘한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때때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그는 여전히 평온과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마주한 곳은, 가난한 자신의 가장 음습하고 누추한 구석이었다.
그의 열정 외 모든 것은 점점 희미해 졌고, 그럴수록 그는 더욱 그림에 몰입하게 되었다. 예술이란 끈질긴 작업이고,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한 지속적인 몰두이며, 세상의 시선을 무시하는 외로운 길이다. ‘끈질기다’는 단순히 쉼 없는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말에 휘둘려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강인한 태도이기도 했다.
“동생아, 나에게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안에, 아니 어쩌면 지금부터라도 네 모든 희생에 걸맞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빈센트의 신념은 한결같았다. 그것은 처절하지만 아름다웠고, 외롭지만 강렬했다. 그의 붓 끝에서 피어난 모든 선과 색채는 그의 심장 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열망의 산물이었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작가의 말>

오는 8월 11일 하나투어에서는 제가 도슨트로 ‘11박 13일의 유럽 예술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미술감상이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아 숨 쉬던 공간을 체험하며 그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특별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빛을 찾아온 아를에서는 빈센트의 작품 속 배경지를 따라 갑니다. 빈센트가 일시적으로 귀를 자르고 치료한 병원으로 아를 중심부에 있는 “에스파스 반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빈센트가 살던 “노란 집”, “랑그루와 다리”, 생 레미 드 프로방스는 빈센트가 일 년 동안 입원하며 그림을 그린 정신병원이었죠. 해바라기를 들고 있는 그의 청동상이 우릴 반겨 줍니다.




빈센트의 그림에는 감정과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빛과 색의 탐구자였던 그에게 있어, 그림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연결고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