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들어 급물살을 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해 은행권은 아직은 나서기 이르다는 분위기다. 10일 디지털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를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되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결제·송금에 적합한 스테이블코인의 특성상 은행이 앞장설 것으로 전망되지만 은행권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디지털자산 규제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의 핵심은 디지털자산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와 분류 체계를 수립하고, 투자자 보호 및 산업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제정안은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신설해 관련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정책 조율을 하도록 디지털자산 발행을 법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이어 금융위원회 중심의 인가·등록·신고제 도입, 특히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에 대한 사전인가제 도입과 더불어 한국디지털자산협회를 통한 업권 자율규제체계 구축 등의 내용도 포함했다.
이번 제정안 발의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동안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발목을 잡은 건 규제 공백이었다. 현재 가상자산과 관련된 법안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규정을 담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과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제하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이 있지만, 가상자산 생태계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종합 법제는 전무한 상태다. 한 가상자산 업권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일단 규제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후보 시절부터 원화 스테이블 코인에 큰 관심을 보인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도 불을 붙였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한 경제 유튜브에 출연해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시장도 만들어놔야 소외되지 않고 국부 유출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을 초대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임명하며 친가상자산적 행보에 힘을 실었다. 김 실장은 2022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국내 최대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 해시드의 싱크탱크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를 지냈다. 그는 지난 3월 해시드오픈리서치에서 낸 ‘원화스테이블 코인 필요성과 법제화 제안’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미래 화폐로서의 잠재력, 미국 국채의 주요 수요처, 전통 금융권의 새로운 사업 기회, 그리고 준비자산 확장을 위한 보조적 역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은행이 앞장서나’ 기대 속 ‘관망세’ 은행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조만간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업계 내부에서는 금융권 전통 강자인 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앞장설 것이라고 예측하는 분위기다.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산업과 밀접한 결제 및 송금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김성곤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상임이사는 “현재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및 정산 수단으로 많이 사용해 시장이 열리면 은행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라면서 “해당 분야에서 가장 많은 정보와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은행이 진출하기 제일 쉽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역시 비은행기관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대체재라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발행 주체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은행권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실제로 은행권은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을 구상 중이다. 지난 4월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는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 등 6개 은행과 금융결제원이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신설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은행 간 코인 발행 방식을 논의하고, 대선 이후인 7~8월쯤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은행권은 아직 직접 나서기에 이르다는 입장이다. 법제화도 중요하지만 실제 인가를 내어주는 금융당국의 의중도 살펴야한다는 설명이다. 익명의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은 준비하면서 기다리는 단계다. 직접 움직이기에 법제화는 아직 미약한 신호”라며 “아무래도 직접 인가를 내주는 금융당국의 입장이 나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