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과 6개 의약단체 간의 2026년도 요양급여비용(수가) 계약이 전 유형 타결로 마무리됐다. 장기화된 의정 갈등과 새 정부 출범 등 변수 속에서 치열한 협상 끝에 이뤄진 결과로, 6개 보건의료단체 중 한 곳도 결렬되지 않고 모두 협상이 타결된 건 2018년 이후 8년 만이다.
수가 인상은 곧 환자가 부담하는 진료비나 건강보험료 인상과 직결되는 만큼 국민적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보공단은 공급자단체와 원만한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재정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 건보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에서 6개 의약단체(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조산사협회)와 ‘2026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체결식’을 갖고 수가계약 절차를 마무리했다. 내년 평균 수가 인상률은 1.93%다. 올해(1.96%)보다는 소폭 낮다. 이번 수가 인상으로 내년 건보 재정에서 1조3948억원이 추가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병원 2.0% △의원 1.7% △치과 2.0% △한의 1.9% △약국 3.3% △조산원 6.0% 등으로 타결됐다. 병원 유형과 의원 유형은 환산지수 인상률 중 각각 0.1%씩을 저평가 행위 항목에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환산지수 인상률과 상대가치 연계분에 대한 최종 확정은 이달 중 개최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수가’로 불리는 요양급여비용은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해 건강보험 당국이 지불하는 대가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1년씩 계약이 이뤄지며, 매년 5월31일까지 건보공단과 의약단체들이 협상을 거쳐 체결한다. 해마다 내는 건강보험료는 수가협상 결과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는다. 국민으로부터 거둔 건강보험료로 의료 공급자에게 수가를 지급하기 때문에 재정을 책임지는 건보공단으로선 수가협상이 한 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날 체결식에서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전공의 집단행동 등 의료계의 특수한 상황에서 환산지수 인상률 순위 적용 원칙을 적용하면서도 치과나 한의 유형에 대해선 보장성을 강화하고, 수가 정책 지원이 이루어질수록 재정을 주자는 의견으로 협의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이어 병원과 의원 쪽에는 저평가된 행위 항목에 대해서 환산지수와 상대가치점수를 연계하는 조정이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공단은 소통과 배려의 자세로 건보의 지속 가능성과 보건의료체계 지속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의약단체들은 충분한 수가 보상과 재정 지원을 건보공단에 요구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의료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그에 걸맞은 공정한 평가와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규 병협 회장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한 삶을 위해 더 늦어지기 전에 필수의료 확충과 이를 제공하는 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있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건강보험 재정 압박 심화…적자폭 확대 전망
경기 침체, 물가 상승, 고령화 등 복합 위기 속에서 건강보험 재정이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의정 갈등 장기화에 따른 의료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건보 재정이 소진된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을 담보해야 하는 건보공단의 고심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건강보험은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30조원에 이르는 안정적 재정 운영을 이어가고 있지만, 중장기 재정 전망은 밝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2026년에 3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2028년에는 적자폭이 1조8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비상진료체계 운영은 재정 확보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이미 많은 건보 재정이 들어간 상태다. 지난해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건보 재정 1조4000억원을 투입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6년으로 예상되던 적자 전환 시점이 의정 갈등 장기화 영향으로 올해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건보 당국의 올해 최우선 과제는 ‘안정적 재정 관리’다. 이를 위해 재정 지출 효율화와 적정 진료·검사 감시 강화, 이른바 ‘사무장병원’으로 불리는 불법 개설기관 행정 조사 및 거짓·부당청구 적발 등을 통해 재정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보 재정에 구멍이 생긴다면 건보료율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국민 보험료 부담 등을 고려해 건보료율은 직장 가입자 기준 7.09%로 2년 연속 동결된 상태다. 그동안 건보료율은 2019년 6.46%, 2020년 6.67%, 2021년 6.86%, 2022년 6.99%, 2023년 7.09%로 해마다 증가해왔다.
건보료율 인상은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국민적 반발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7월 성인 10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건강보험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8%인 건보료율 법정 상한을 높이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55.1%가 ‘부정적’이었다. 건보료는 법에 따라 월급 또는 소득의 8%까지 부과할 수 있게끔 묶여있는데, 2023년 보험료율(7.09%)이 7%대를 돌파하면서 상한에 가까워졌다.
새 정부가 건보료를 인상할지는 지켜볼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대선 후보 시절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공약 재원 마련책으로 거론되는 건보료 인상과 관련해 “국민의 부담을 높이는 보험료 인상은 단기가 내 검토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지금 상태에서 지출을 절감한 뒤에 구조조정 하는 쪽에 집중하더라도 당장은 어렵다”면서 “건보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지금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렵다. 일단은 현재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