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검사 다른 결과’ 막는다…만성질환 ‘진단 표준화’ 전개

‘같은 검사 다른 결과’ 막는다…만성질환 ‘진단 표준화’ 전개

기사승인 2025-07-07 06:00:08
질병관리청 국가진단의학표준검사실 연구원들이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표준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제공

# 김태용(가명·53세) 씨는 최근 집 근처 내과의원에서 당화혈색소(HbA1c)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김 씨의 수치는 6.5%로, ‘당뇨병’ 진단이 나왔다. 걱정이 커진 김 씨는 다른 병원에서 재차 확인을 했는데, 앞서 받은 수치보다 낮은 6.3%인 것으로 나타나 ‘당뇨병 전 단계’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같은 검사를 받았지만 병원에 따라 결과가 달라서 추가로 검사를 더 받았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이 불필요한 검사와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만성질환을 정확히 진단하는 ‘진단 검사 표준화’ 사업을 전개한다.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적 개입을 넘어 의료비 절감과 국가 보건정책의 신뢰성 제고를 아우르는 전략을 추진한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동 발간한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국내 13개 주요 만성질환의 진료실 인원은 약 2143만명이다. 이는 전년보다 2.7% 증가한 수치다. 이로 인한 진료비는 연간 90조원 이상으로, 전체 진료비의 84.5%를 차지한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층은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는 경우가 많아 진료비 부담이 크다. 전문가들은 고령층 의료비 증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진단 검사의 비효율적 운영을 꼽는다.

한국 고령화 관련 의료비 지출 현황. 질병관리청·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재가공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당뇨병 유병률은 16%에 이르고, 전단계 환자까지 합치면 1000만명이 넘는 국민이 혈당과 당화혈색소 검사를 받고 있다”며 “의료기관마다 검사 수치가 표준화돼 있지 않으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우려가 큰 만큼 검사 표준화 사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오차 범위를 최소화해 어떤 의료기관에서든 신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짚었다.  

윤여민 건국대병원 진단의학과 교수는 “진단 검사 결과를 표준화하지 않으면 해당 수치가 기준보다 낮아 진단이 늦어지거나, 반대로 높게 나와 불필요한 검사와 의료비가 발생할 수 있다”며 “환자 건강에 직접적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단 검사 표준화는 고령화시대 의료 시스템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의료 환경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며 “검사의 신뢰도를 높이고 과도하거나 중복되는 검사와 치료 지연을 줄여 의료비를 효율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준 검사법을 구축하고, 표준물질의 참값을 확인해 검사실 간 측정 오차를 줄이는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미 26만6000개 이상의 검사기관을 대상으로 표준화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SA), 국제임상화학회(IFCC) 등도 유사한 체계를 갖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진단 검사의 표준화를 고령화시대의 핵심 공공 전략으로 보고 있다. 질병청은 지난 2011년부터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국가 진단의학 표준검사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화혈색소, 콜레스테롤, 크레아티닌 등 만성질환 주요 진단 검사 항목 10종의 검사값이 모든 병원에서 동일하게 측정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아울러 대한진단검사의학회 등과 협력해 국가가 표준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의료기관과 진단검사시스템 제조사에 공급해 검사 정확도를 높이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진단검사 비표준화로 인한 문제점.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제공

검사 정확도는 큰 폭으로 개선됐다. 지난해 총 79개 의료기관과 293개의 검사 시스템이 표준화 사업에 참여한 결과, 2015년 60% 수준이던 검사 정확도는 2022년에 90%를 넘어섰다. 정밀도도 90%에 근접한 상태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신양화학의 박혜정 차장은 “사업 이후 검사 오차 사례가 줄고, 중소병원도 표준 프로세스를 갖추면서 병원 간 검사값 편차가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진단 표준화사업을 넓히고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 교수는 “표준화 작업은 막대한 투자 비용이 드는 일”이라며 “정부, 의료기관, 의료진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지속적이고 협력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는 꾸준히 투자를 확대하고, 의료기관은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국내 제조사나 검사실들은 표준화된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며 “향후 암환자의 진단을 위한 종양표지자검사, 만성간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 표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차장도 “표준화 사업의 검사 항목을 넓혀서 더 다양한 진단시약의 신뢰도를 높이면 국민 보건 향상 기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질병청은 표준화한 검사 환경을 정착시키고 질 높은 진단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사업을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표준화한 빅데이터로 연구 및 예방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문가 등과 협력해 올바른 검사 기준을 세우고 정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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