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치의학을 아십니까?

복치의학을 아십니까?

기사승인 2010-03-26 18:00:00

[쿠키 건강] 한의사들은 맥을 짚는다. 맥의 크기, 매끄러움과 깔깔함, 힘의 강약, 박동 수와 리듬으로 질병을 구분해내기 위함인데, 일반인들은 이해하기에 어려운 영역이다.

맥진은 신체기능이 떨어지거나 흥분되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오장육부의 상태까지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 반면 환자의 몸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가슴과 복부를 통해 촉지하고 판단하는 ‘복진’은 보다 사실적이고 객관적이다.

한의학의 비과학적 논란은 사실 한의사에게도 책임이 있다. ‘복진’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복진’과 ‘맥진’은 모두 한의학 고유의 전통적 진단법인 망문문절(望聞問切)의 사진법(四診法) 가운데 ‘절진’에 속하지만 객관성에서 복진이 한수 위다.

복진은 그 정확도가 마치 ‘수학공식’과 같다. 숙련된 한의사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들도 복진법만 숙지한다면 스스로 몸 상태를 유추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늑골 아래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을 때 저항감과 함께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 간 기능 저하 및 간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복진은 동의보감 보다 훨씬 이전인 2500년경 상한론의 저자 ‘장중경’을 시초로 한다. 지금껏 복진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당시 의사계급이 낮아서 귀족의 몸에 손을 댈 수 없게 되면서 명맥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이후 일본에도시대의 의학가인 요시마스 토오도오(1702∼1773)가 상한론의 정밀한 분석을 통해 그 실체를 재현해냈고 필자가 23년 전 이를 받아들여 부활시켰다. 복진이 핵심이 되는 한의학을 ‘고법의학’이라고 부른다.

고법의학에서는 복진을 통해 인체의 ‘독(毒)’을 찾아낸다. 건강을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땀이나 대소변으로 원활하게 배출돼야 하는데, 아닐 경우 우리 몸 어느 부위에 정체돼 노폐물(독)로 쌓이게 되면서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셈이다.

독의 위치를 찾아냈으면 간단한 한약을 처방한다. 고법의학에서는 대부분 다섯 가지 한약재 내에서 처방을 끝내는데 약이 가진 개성을 최대한 살려내기 위해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대황’, ‘감수’ 같은 독성이 있는 한약재를 사용한다는데 있다.

한약의 간독성을 의심한다면 한약으로 인체의 독, 바로 병독을 다스리는 ‘이독제독(以毒攻毒)’의 이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때로는 생쌀과 간질환에 좋은 검정콩을 메주처럼 발효시킨 ‘향시’도 환자상태에 따라 약재에 포함시킨다.

고법의학은 오장육부에서 유발되는 질환은 물론 정신분열병, 공황장애 등 신경정신질환에 적용된다. 특히 정신분열병 환자는 복진을 통해 흉복부의 두근거림을 찾아내는 것이 치료의 핵심인데, 공통적으로 흉복부서 샘물이 솟는 것과 같은 박동이 느껴진다.

이밖에도 아토피, 베체트, 파킨스 등 난치병 치료에 적합하다. 또 고법의학을 쓰는 한의사들은 태양·태음·소양·소음 등 체질론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표준화를 의심할 필요도 없다.
노영범(부천한의원 원장·복치의학회 회장), 정리=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민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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