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통일부는 “북한이 실무접촉을 23일 개최하자는 우리 측 제안에 동의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다만 회담 장소는 당초 우리 측이 제의한 대로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할 것을 다시 제의한다”고 밝혔다. 김형석 대변인은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 제의에 대해선 “내부 검토 후 정부 입장을 추후에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절실한 北, 우리 정부는 ‘속도조절’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놓고 남북 간에 기 싸움이 또다시 시작됐다. 북한의 경우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로 막힌 경제적 고립을 뚫기 위해선 금강산 관광 재개가 절실하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에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 대가의 군사적 전용 가능성을 우려해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북한은 계속해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개성공단 정상화 및 이산가족 상봉과 ‘패키지’로 연계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18일 담화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을 이산가족 상봉 적십자 실무접촉에 하루 앞선 22일 금강산에서 열 것을 제안했다. 조평통은 “추석을 계기로 금강산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진행하고 (제2차 남북 정상회담) 10·4선언 발표일에 즈음해 화상상봉을 진행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적십자 실무접촉 기간에 남북이 면회소도 돌아보자는 제안도 했다.
북한은 앞서 지난달 10일에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접촉을 갖자면서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을 함께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가 적십자 접촉만 수용하자 북한은 두 회담 모두 보류했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달러’ 때문이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통해 벌어들였던 수입은 2008년 중단 당시 기준으로 연 4000만 달러(약 440억원)로 추정된다. 5만3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을 해야 하는 개성공단과 달리 금강산 관광은 기반시설과 작은 인원으로도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북한은 대북 제재 등으로 현금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날 북한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유지기금을 모으라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지시한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모금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지시에 따른 것으로, 모금 부진에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등이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금강산의 남측 재산을 몰수하고 자신들의 특구로 만들어 중국인 관광객들을 독자적으로 모집해 왔지만 금강산 관광을 살리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북한이 다시 남측에 손을 내민 데는 이런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담화에서 실무회담 의제로 관광객 사건 재발방지, 신변안전, 재산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신뢰가 쌓이기 전에 급격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직 개성공단 정상화가 완료되지 않은 만큼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정부 당국자는 “금강산은 우선 북측이 일방적으로 국제관광특구로 바꾼 것으로,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관광 재개를 위한 실질적인 개선 조치를 내놓은 이후에야 회담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이번에도 북측의 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 제안을 거부할 경우 이산가족 상봉 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적십자 실무접촉 장소로 우리 측은 판문점을, 북측은 금강산을 각각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