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저는 최근 세레스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세레스에 납 범벅’이라는 인터넷판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인터넷 독자를 낚은 건지, 아니면 보도자료에 낚인 건지 아직도 헷갈립니다. 어쨌든 독자들에게 좀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날아온 돌에 황망히 맞아죽는 개구리는 없어야 하니까 말이죠.
세레스는 다들 아시죠? 전량 수입하는 천연과일 주스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우리 어머니들께서 이유식을 시작하는 아기들에게 많이 먹이는 인기상품이죠.
세레스가 큰 폭의 매출하락을 겪고 있답니다. 지난달 21일 민주당 김용익 의원이 ‘수입 과일주스 국제기준 초과 납 검출’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면서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김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 받은 ‘수입 과일주스 납 검사 현황’ 자료를 토대로 “2010년부터 2013년 9월까지 국제기준치(CODEX) 0.05ppm을 초과한 37건 327t의 과일주스가 수입 유통됐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기준치가 0.3ppm으로 국제 기준치 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발생한 일인데요. 김 의원은 또 “100% 천연과일주스라는 광고와 함께 건강주스로 임산부·어린이에게 인기가 있는 세레스 주스도 국제기준치를 2~3배 초과한 0.1~0.15ppm의 납이 검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갓 수습 딱지를 뗀 후배 여기자가 이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고, 야근을 하던 제가 기사 데스킹을 봤습니다.
애초 후배 기사에는 세레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는데, 제가 “임마~ 세레스가 최고 인기 상품인데 그걸 앞으로 빼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헉’하고 읽을 거 아냐”라고 혼을 내고 기사를 고쳤습니다.
그래서 ‘수입 이래서 좋은 줄 알았는데… 세레스 주스, 납 범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출고됐습니다. 세레스 주스 사진도 이쁜 거 찾아 넣었죠.
그런데 난리가 났습니다. 2011년부터 세레스를 공식 수입 판매한다는 업체(에스고인터내셔널)에서 보도 이튿날 곧바로 언론중재를 걸어왔습니다.
업체 주장은 간단합니다. 2010년 수입된 세레스에서는 국제 기준치를 초과한 제품이 있지만 2011년 자신들이 공식 수입을 시작한 이후 제품은 국제 기준에 적합하다는 겁니다. 유통기한이 고작 1년이니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은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죠.
업체 사람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보도자료에 낚인 것 같아 불쾌해지더군요. 분명 김 의원도 2010년 수입 제품만 국제 기준치를 초과했을 뿐, 현재 유통되는 제품은 국제 기준치를 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셨을 텐데 그냥 ‘세레스도 국제 기준치를 2~3배 초과한 납이 검출됐다’고만 했으니 말이죠.
의심이 들었습니다.
‘초선 의원이라 국감에서 스타 돼보려고 그런 거 아냐?’
6일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이를 담당했던 A 비서관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시점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마치 현재에도 국제기준을 넘는 제품이 유통된다는 식으로 보도자료를 낸 것이 잘못 아니냐고 말이죠. 자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A 비서관은 “세레스의 경우 2011년 이후 검사에서 국제 기준치를 초과하지는 않았다. 보도자료는 세레스를 겨냥해 작성된 게 아니라 국내 기준이 국제 기준에 비해 허술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수십 개 제품을 설명하느라 시점이 세분화되지 않았을 뿐이다”라며 “업체가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기자님이 관련 기사를 써주시면 되지 않느냐”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특정 업체를 해치려고 악의적으로 보도자료를 낸 것이 아니다”면서도 “다만 일부 수입업체에서 국내 주스는 당분이 많다는 둥 폄하하면서 수입 주스는 마치 별세계에서 온 것 인양 광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도 했습니다.
A 비서관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불친절합니다.
‘세레스의 경우 2010년 조사에서 국제기준을 초과한 납이 검출됐으나 2011년 이후 수입 유통된 제품에서는 국제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써야 친절한 건데 그냥 ‘세레스는 국제기준치를 초과한 납이 검출됐다’고만 쓴 것입니다.
세레스 수입 업체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업체 B 이사는 “아직 공식 집계 전인데요. 대형 마트 두 곳의 매출액이 기사가 나간 뒤 4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10개 팔리던 게 4개 팔린다는 거죠.
“우리만 기사 쓴 게 아닌데…”라고 항변하니 B 이사는 “국민일보 쿠키뉴스 기사가 가장 섹시해서인지,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검색되는데다 다른 유명 뉴스 사이트에서 회자되고 있다”고 하시네요.
반성합니다. 보도자료를 잘 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낚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김 의원은 올해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선정하는 국정감사 우수위원으로 뽑히셨던데, 다음부터는 좀 더 친절하게 보도자료를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라는 아우성이 나오지 않게 말이죠.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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