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정치권의 화두로 자리 잡은 ‘개헌논의’가 당간 입장차뿐 아니라 같은 당 내에서도 불협화음을 보여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개헌론 자체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고 있어, 내년 대선 전에 권력구조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제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개헌론이 물망위에 떠올랐다. 그러나 매번 논의에 부쳐진 채 쳇바퀴만 돌았기 때문에 이번 개헌논의 역시 구체적인 결과물을 낼 지는 미지수다.
개헌에 관한 불을 지핀 건 정세균 의원의 발언에서 시작된다. 정 의장은 “개헌은 누군가 반 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발언한 데 이어 14일 야당의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우윤근 전 의원을 국회 사무총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우윤근 사무총장은 “다른 것보다 국회 내에 개헌특위가 구성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초장부터 개헌에 대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여야 모두 아직 뚜렷한 대선주자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논의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개헌론이 급물살을 타자 각 당은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온도차를 보였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14일 개헌 논의가 불거진 데에 “개인적으로 시도해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면서 “내각제도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긍정했다.
30년 이상을 정치권에 몸 담가 온 김 대표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30년째 체험하고 있다”면서 “5년 단임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노정이 돼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987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또한 “개헌은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내년 대선에서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긍정하면서도, “개헌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야 할 사항”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여당과 청와대는 개헌론에 대해 일단은 유보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원내수석부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은 “20대 국회가 민생 살리기를 위해 협치를 해야지 개헌 논의부터 시작하면 되겠느냐”면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경제 활성화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더민주 박완주 원내수석은 “(개헌이 성사된) 87년 체제가 내년이면 딱 30년인데, 한 세대가 흘렀기 때문에 변화에 맞춰가려면 개헌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맞받아쳤다.
‘개헌 블랙홀론’은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언어’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 상황이 블랙홀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여유가 있나 싶다”면서 개헌론에 부정적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지난해에 떠오른 개헌론의 핵심은 내각제에 있다. 당시 새누리당 몇몇 의원들은 개헌론을 놓고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개헌론이 부상하는 게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임기 말에 레임덕, 곧 권력누수가 가속화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개헌론이 뜨거운 감자가 되는 데에 청와대는 앞으로도 ‘의견 유보’의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노동개혁 등 현안에 집중하겠다는 공언을 통해 개헌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 바 있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원내 과반인 15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개헌’은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상황에서 이를 거론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다시 끄집어낸 건 다름 아닌 친박계 의원이었다. 지난해 11월 친박계로 알려진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이미 죽은 제도”라 못 박으며,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로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게 정책에 일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개헌론은 더민주 내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가 있다. 개헌론이 떠오른 것을 놓고 더민주 ‘투톱’ 격인 김종인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는 개헌론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적극적인 논의여부를 놓고는 의견을 달리 했다.
김 대표는 적극적으로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폈지만, 우 원내대표는 ‘민생우선’을 내건 것.
김 대표는 “권력구조 자체에 대한 변화를 취해 앞으로 상호 협치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협치’의 전제로 개헌을 내놓았다.
반면 우 원내대표는 “원내대표는 개헌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민생이다”면서 선을 그었다. 그는 “이는 개헌에 대해 아직은 고민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