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아프간 정부는 ‘아프간 영토 군’(Afghan Territorial Army, 이하 ATA)이라는 이름으로 정규군을 보조하는 민병대 창설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유사한 이름을 지닌 ‘인도 영토 군’(Indian Territory Army)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영토군은 인도령 카슈미르에 배치된 여러 종류의 민병대 중 하나로 인권침해 기록이 만만찮다.
ATA는 같은 개념으로 창설된 정규경찰 보조 병력 즉, ‘아프간 지역 경찰’(Afghan Local Police, ALP)의 ‘군 버전’이라 할 수 있다. ALP 모델도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ALP는 얼핏 지역 기반 ‘경찰’같지만 실은 ‘마을수비대’ 개념의 민병대다. ALP는 2009년 아프간 주둔 미특전사령부(SOF)가 대 탈레반 작전의 일환으로 일반 주민 무장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인 2010년 8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망설임 끝에 최종 사인한 후 ALP는 공식 출범했다. ALP 창설 두 달 후, 내무부 고위 관리였던 에스마툴라 돌랏짜이(Esmatullah Dawlatzai) 중장(Maj. Gen)은 이런 말을 남겼다.
“군벌과 마피아들 문제가 우리 아프간 사회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꾸 새로운 이름만 부여하고 있다.”
에스마톨라 돌랏짜이 중장의 이 말은 군벌과 마피아 그리고 민병대의 밀착 관계를 잘 꼬집었다.
◇ 군벌, 마피아 그리고 민병대
ALP는 내무부와 아프간 정규 경찰(ANP) 명령체계 아래 있지만 온전히 법의 통제를 받아온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적잖은 사병을 거느린 군벌들과 정치적 입김이 막강한 마피아격 인물들(종종 정치인)의 영향을 받아왔다. 군벌들의 사병이 ALP에 대거 동참하는가 하면 범죄 이력이 역력한 이들, 그리고 탈레반 활동 경험이 있는 자들까지도 ALP에 다수 가담해왔다.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민병대는 원칙과 규율 준수에 예민하기 보다는 ‘무기든 권력’을 과시하기 십상이었다. 약 3~4주 동안 짧은 훈련을 통해 싼 노동력으로 정착한 이 민병대는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권침해로 비판을 받았다.
‘휴먼라이츠워치’의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북부 바글란 지방(Baghlan province)에서는 전년도 출범한 ALP조직에 악명 높은 군벌 굴부딘 헤끄메띠아르가 이끄는 전 무자히딘 조직 ‘히즈비 이슬라미’ 대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이 지역의 ‘스트롱맨’으로 통하는 누르-울-학의 부하들도 참여했다. 이렇게 구성된 ALP는 2010년 출범 직후 미군과 함께 나선 지역 순찰에서 주민들 가옥을 급습했다. 이 과정에서 9세 소년을 살해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듬해에는 같은 지역 ALP 대원 네 명이 13세 소년을 납치한 후 집단 강간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이 강간을 자행한 장소는 바로 ALP 부사령관의 거처였다. 처벌은 없었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정규)경찰은 미군 특전사와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감히 처벌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10월 ALP 대원 한명과 탈레반과 연계가 있는 또 다른 사람과 함께 바크타바드(Baktabad) 마을의 남성 두 명을 살해한 적도 있었다. 살해된 남성의 가족이 경찰을 찾았을 때 들었던 말도 같았다. 미 특전사 사령부가 ALP를 지원하는 한 (정규)경찰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군은 그들대로 이 문제가 아프간 (정규)경찰의 업무라고 말했다. 이렇듯 책임소재를 떠넘기기 바쁜 미군과 경찰 사이에서 민간인 희생은 묻혀갔다. 이밖에도 납치, 강간, 구금 중 고문 심지어 발에 못을 박는 고문 등 ALP가 연루된 인권침해 기록은 광범위하다.
ALP의 재정 지원은 최초 민병대 안을 기획하고 작전 파트너로 삼아온 미국이 전담하고 있다. ALP 인권침해에 대한 비판이 곧 미국의 겨냥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ALP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미국은 아프간 정부에게 ALP 개혁을 강력히 요구했다. 개혁을 전제로 지원하겠다는 조건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ALP 개혁 훈련 프로그램에는 검문소 유지법, 포로를 인간적으로 다루는 법, 인권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 2월 아프간의 유엔 미션인 UNAMA(UN Assistance Mission in Afghanistan)가 발표한 2016년 민간인 피해 자료에는 주목할 대목이 있다. 보고서는 2016년 민간인 인명 피해가 그 전년도에 비해 줄어든 이유 중 하나가 지역 마피아나 군벌들과 연계된 ALP 경찰 2000명을 해고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 주민들 납치·강간·고문 연루돼온 ‘아프간 지역경찰’
ALP를 포함해 아프간에서 수없이 등장하고 사라졌던 민병대 활용사를 고려하면, 현재 아프간 정부가 적극 검토 중이라는 ATA에 대한 우려는 새롭지 않다. 80년대 소련 침공 당시 친 소련파 정부였던 아프간 인민민주당(PDPA) 정부는 반소 성향의 무자헤딘 세력을 토벌코자 친 정부 민병대를 적극 활용했다.
90년대 들어 소련이 아프간을 철수할 즈음 아프간에는 6~7만 명가량의, 여러 종류의 민병대원들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시기 자체 명령체계와 위계질서를 구축한 민병대들은 소련 철수 후 내전에 빠져들었다. 90년대 발생한 내전은 아프간 군벌들이 서로 다른 외세를 등에 업고서 편을 바꿔가며 싸우던 시기다. ‘카불이 쑥대밭이 됐다’는 묘사가 말해주듯 아프간은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 틈새를 비집고 1994년부터 서서히 등장한 게 엄격한 이슬람 율법 사회를 주창한 탈레반 운동이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로도 아프간 정부와 미국은 다양한 민병대를 지속적으로 조직해 대 탈레반 전선에 활용했다. 여기에 현재는 아프간 영토군(ATA)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민병대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ATA의 임무는 대 IS 작전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ATA는 아프간 동부 낭가르 하르(Nangarhar) 지방의 아친 지구(district, 한국의 ‘구’ 정도에 해당하는 행정단위) 그리고 콧(Kot) 지구에 우선 배치가 고려되고 있다. ATA의 주 임무는 파키스탄 국경과 인접한 일대에서 활동하는 ‘아프간 IS’를 집중 방어하는 것이다. 카불 베이스의 씽크탱크 AAN은 동부 지방 주둔 미군이 대 IS 작전에서 지역 민병대와의 공조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프간 정부군과 미군이 대 탈레반 작전과정에서 부족민을 무장시키고 이들을 민병대로 이용한 것이 아프간 IS의 부상으로 이어졌다는 AAN의 분석이다.
2009년으로 거슬러 가보자. 미군과 아프간 정보국인 ‘국가치안부’(National Defense Service)는 대 탈레반 작전에 끌어들일 민병대를 조직코자 낭가르하르 지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곳의 아친(Achin)지구와 신와르(Shinwar)지구에 거주하는 신와리 부족(파슈툰족의 하위부족 sub-tribe)들에게 돈과 무기를 제공해 대 탈레반 민병대를 조직했다. 해당 부족 민병대 활용은 대 탈레반 전선에서 효과를 있었다.
다음이 문제였다. 무기를 제공받아 기세등등해진 해당 부족들은 적(탈레반)이 토벌되자 다른 부족들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웃한 알리쉐켈(Alisherkhel) 부족(파슈툰족 하위 부족 sub-tribe)의 땅을 빼앗는 바람에 이 일대 부족 전체가 토지를 두고 무장분쟁에 빠져들었다. '아프간 분석 네트워크'는 이때 알리쉐켈 부족이 국경선 넘어 파키스탄 땅에 거주하는 무장 부족들을 불러들였다고 설명한다. 초대받은 부족들은 ‘파키스탄 탈레반’으로 통칭되는 무장 세력 일부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이 변방 지역에서 무장한 부족 집단들의 느슨한 결합체다. ‘외세축출’이라는 민족주의적 의제를 내세우고 있는 아프간 탈레반과 달리 파키스탄 탈레반은 수니 극단주의 이데올로기와 호전적 부족문화가 강하게 결합돼 있다. 시아파 공격과 같은 종파주의 경향도 파키스탄 탈레반이 아프간 탈레반과 비교해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이 파키스탄 탈레반 세력 일부는 아프간 영토에 들어와 토지를 둘러싼 무장분쟁에 개입하고 알리쉐켈이 ‘빼앗긴’ 토지를 되찾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아프간 동부에 정착했다. ‘아프간 IS’ 시대의 시작이다.
최근 아프간 동부와 북부에선 아프간 탈레반과 IS간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복잡한 전선에서 IS를 상대할 ‘아프간 영토군’은 지뢰밭에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태국 방콕=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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