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는 여직원 채용을 꺼렸다”, “룸살롱에 여직원을 데려가, 여성접대부를 옆에 앉히기도 했다”…. 최근 갑질 논란으로 공분을 산 한 스타트업 대표에 대한 전 직원의 폭로다. 해당 업체 대표는 논란이 커지자, 결국 사퇴키로 해 사안은 일단락됐지만, 이 폭로는 민간 분야, 특히 기업 내 여성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겠다고 공헌했다. 그리고 취임 1년, 정부 부처 등 공공부문에서 여성 ‘유리장벽’이 상당수 깨지고 있다. 반면, 민간에선 여전히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이 존재해 조직 내 성평등 의식 확산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일단 공공부문의 변화부터 살펴보자. 지난 3월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계획(2018~2022)’. 정부합동으로 수립한 이 계획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중앙행정기관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당초 올해 고위공무원과 본부과장급 여성 진출 현황을 보면 괄목할만한 변화가 느껴진다.
일단 고위공무원단 전체적으로 6.8%가, 본부과장급은 15.7%의 비율로 여성 인재 진출이 활발했다. 소관 정부위원회 평균 여성참여율이 법정기준인 40%에 이른 곳은 교육부, 인사혁신처, 국가보훈처,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상청, 통계청 등 6개 기관에 달했다. 참고로 여성가족부(장관 정현백)은 주최 기관인 탓에 우수기관에서 제외됐다.
일례로 통계청의 경우를 보면, 예산과 기획 등 핵심 보직에는 여성 과장 진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여성과장은 전체 39명 중 14명으로 늘기도 했다. 각국 주무과장의 여성비율은 더 높았다. 전체 7명 중 4명(57.1%)이 여성이었던 것. 고위공무원단에는 기존 여성이 전무했던 것에서 12.5%로 비약적인 변화가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관 모든 개별 정부위원회의 양성참여비율이 40%에 이른 기관은 12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각각의 기관들은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세청 ▶금융위원회 ▶기상청 ▶농촌진흥청 ▶법제처 ▶병무청 ▶식약처 ▶통계청 ▶특허청 등이었다.
이중에서 대표적으로 권익위는 신규 위원 위촉시 여성을 우선적으로 선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여성위원은 2015년 16명에 불과했던 것에서 2년 만에 26명으로 대폭 늘었다. 여가부는 여성인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한편, 지방대학 소재 학자 등을 적극 초빙해 눈길을 끌었다.
‘고위공무원단’도 변했다. 이전까지는 폐쇄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란 오명을 들었던 터. 고위공무원단은 앞서 거론한 것처럼 지난해 이전까지는 여성 진출이 사실상 제한돼 있어 공직사회내 ‘유리장벽’의 대명사로 꼽혀왔었다. 그러나 현정부 들어 이러한 유리장벽의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통계청, 권익위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4급 이상 공무원도 새만금개발청과 문화재청,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은 여성 진출의 우수사례로 뽑히기도 했다.
이밖에도 국립대학교와 교장 및 교감, 군·경찰 분야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있어, 공공부문의 여성참여는 향후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민간은 여전히 ‘콘크리트 장벽’
이렇듯 공공부문에서는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민간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실제 민간에선 유리장벽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다. 국제여성기업이사협회가 2017년 5월 21일 아시아태평양 20개국의 1557개 상장기업을 분석한 ‘2017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 이사회 임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4%에 불과,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14%의 비율을 보인 아프리카보다도 낮은 수치다. 유사한 수준은 아태지역이 아닌 중동(0.9%) 등인데, 이들 문화권이 이슬람의 영향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사실상 막혀있음을 고려하면, 우리의 유리장벽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임신 및 출산, 육아의 부담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가부장적 문화에 기인한다는 것은 사실 새롭지 않다. 앞선 스타트업 사례에서 보듯 인사 및 채용 결정권자들이 주로 남성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뿌리 깊은 성차별이 유리장벽의 두께를 더욱 두텁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의 사례는 기업 내 성차별 문화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최근까지 국내 대기업에서 부장에 재직하다 임원 승진에 탈락, 퇴직한 A씨. 그는 국내 기업 문화를 두고 ‘유리장벽’이 아닌 ‘콘크리트 장벽’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제는 이런 성차별이 구성원들의 사고를 지배한다는데 있다. 여성 상사조차 여직원 채용을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면접에서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는 질문이 대수롭지 않게 등장한다”고 성토했다.
공공부문에선 여성 진출이 증가하고 있다지만, 이렇듯 민간에선 아직도 능력 있는 인재들이 ‘여성’이란 이유로 채용 및 승진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민간에 영향을 미치긴 할 터. 그럼에도 민간의 ‘콘크리트 장벽’의 ‘균열’까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