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매출 부진한데… ‘물건 팔 생각 없는’ 매장 속속 등장, 정체는?

오프라인 매출 부진한데… ‘물건 팔 생각 없는’ 매장 속속 등장, 정체는?

기사승인 2019-11-12 04:00:02

유통업계 매출이 온라인에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기업들은 비용을 감수하면서 오프라인 공간 마련에 나섰다. 소비자에게 브랜드와 함께한 경험을 선사하면서 긍정적 기업 이미지도 각인시키는 마케팅 전략이다.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들이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9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온라인 매출은 17.8% 성장했지만 오프라인 매출은 5% 감소했다. 온·오프라인 매출 교차는 의류에서 두드러졌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유통업체 3사의 의류매장 매출 감소는 22.35%에 달했다. 반면 티몬, 위메프, 롯데닷컴 외 6개 주요 온라인판매사의 의류 매출은 13% 증가했다. 

이 같은 시장 동향을 거스르고 오프라인 공간으로 나서는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평범한 매장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을 홍보 전략으로 내세운다. 온라인 기반 편집숍 무신사는 지난 9월7일 무신사테라스를 오픈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AK&홍대 빌딩에 위치한 무신사테라스는 ‘패션 문화 편집공간’으로 소개됐다.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이 공간을 활용해 파티, 패션쇼, 공연, 전시회, 요가수업 등 체험 콘텐츠를 선보인다.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도 지난달 24일 청계산 입구에 ‘솟솟618’을 선보였다. 솟솟은 소나무를 닮은 글씨이며, 618은 청계산의 높이를 상징한다. 이 공간에서는 등산복과 등산용품을 대여할 수 있다. 내부 벽면은 과거 코오롱스포츠가 출시했던 상품들을 전시한 히스토리존으로 꾸몄다. 원하는 문구를 재봉틀로 새겨주는 네임태그 제작 서비스도 제공한다. 해당 서비스에는 코오롱스포츠 상품을 디자인하며 발생한 폐자재가 활용된다. 방문객은 입구에서 스탬프를 찍고 방명록을 작성할 수 있다. 솟솟618은 산장 분위기로 연출된 카페도 운영한다. 카페 내부에도 코오롱스포츠 제품들이 전시됐다.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은 서울 성수동에 ‘아모레성수’를 열었다. 지난달 10일 개장한 이 공간에서는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3000여 종을 사용해볼 수 있다. 소규모 예약제 메이크업 강의, 꽃꽂이 강의도 열린다. 아모레성수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메이크업 도구는 파스타면과 종이로 만든 친환경 제품이다. 체험공간 한쪽에는 아모레퍼시픽이 지난 1980년대에 방문판매한 제품들이 전시됐다. 'ㄷ'형 건물 중심에는 한국 토종 식물로 꾸며진 정원 ‘성수가든’이 있다.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 복합문화공간의 특징이다. 무신사테라스에서는 이곳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기념품 성격의 상품만 소량 전시하고 있다. 내부 카페와 옥상정원도 입장료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아모레성수도 별도의 입장료나 체험비가 없으며 생수와 ‘성수토너’만 판매한다. 체험용 화장품에는 QR코드가 붙어있어 온라인으로 구매하거나 상품정보를 얻을 수 있다. 솟솟618에서는 일부 상품을 판매하지만 최소한의 재고만 보유하고 있다. 솟솟618에서도 상품정보를 제공하며 온라인 구매를 권장한다.

경험을 제공해 소비자가 브랜드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복합문화공간의 목표다. 무신사테라스 홍보 관계자 피알원 박지은 대리는 “각 브랜드가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만남의 공간으로 무신사테라스를 활용한다. 매출은 주된 목적이 아니다”고 말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양아주 과장은 “솟솟618에서 발생하는 매출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다”며 “방문객이 산행 전후로 코오롱스포츠가 마련한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추억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 리테일디자인팀 김영호 사원은 “화장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화장법을 배우며 스스로를 가꾸는 휴식공간”이라며 “자연친화, 도시재생, 브랜드 역사 등을 부각해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도 제고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복합문화공간이 강력한 고객 확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이현우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브랜드를 체험하는 동안 소비자는 ‘이 회사 제품을 사야한다’고 스스로 설득하는 심리과정을 겪게 된다”며 “체험 기억을 가진 소비자는 온라인 홍보만 접한 소비자보다 해당 브랜드 상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매 이후에는 자신의 지출에 대해 ‘합리적인 소비였다’고 평가하는 심리적 정당화가 일어난다”며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강화된다”고 말했다.

김찬석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상품과 체험활동의 조합이 독특할수록 브랜드 이미지 확산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소비자들은 정보력과 자존감이 높다. 기업이 자신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면 상품에 대한 흥미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가령 화장품과 꽃꽂이는 관련성이 없지만, 아모레성수에서 뜻밖에 꽃꽂이 체험을 한 사람은 이후 꽃이나 정원을 볼 때 아모레를 회상하게 된다”며 “매출 없는 오프라인 공간 운영은 일종의 투자다. 결코 비용 소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성주 인턴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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