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오세영 시인을 찾는다. 역시 12월에 관한 그의 시가 있어 나는 반가웠다. 난 왠지 12월인데도 날짜 가는 줄 모른다. 그냥 2019년 한 복판 같다. 어쩌면 그냥 선물로 주어지는 하루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매일 일상을 지배하는데, 너무 열심히 살다 보니, 아니 세상이 날 너무 원해, 내가 일상에 의해 지배받는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다시 12월부터, 나는 나 자신이 내 일상을 지배할 것이다. 나는 평생을 알림 시계 없이 산 행복한 인간이다. 나는 잠에서 깸으로 가장 완만한 이행을 꿈꾸고 그걸 실천한 삶이다. 그러니까 나는 알림 시계 없이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잠에서 깨어남의 '황당함'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기분 나쁘면 날 욕해라. 애가 그러니까.
나는, 배철현 선생처럼, 아침마다 오늘 하루를 인생의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24 시간을 내 앞에 전개시켜 보며 산다. 그래 나는 아침 마다 감사 일기를 쓰고, <하루를 위한 최선의 전략>을 짠다. 그런데, 요즈음 그 리듬을 잃었다. 나는 다시 12월부터 시간을 다시 안배(按排)하고, 그 시간에 알맞은 적절한 행위를 배치(配置)하고, 그 일에 몰입(沒入)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온전히 몰입할 대상을 찾지 못했을 때, 가장 불행하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흘러 없어질 하루, 한 달을 구성하는 1/30, 일 년을 꾸미는 1/365로 폄하(貶下)한다. 일 년은 하루의 반복이며, 인생을 하루의 긴 반복이다. 내가 오늘 하는 일이 내의 개성이며 운명이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생각이다.
아침을 생산적으로 보내라는 말보다 중요한 것이 아침을 행복하게 보내야 하루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아침은 전 날 밤에 내일을 기대한 양만큼 크다. 기대를 하면 사람은 더 행복해진다. 사소하더라도 재미있을 일을 정하고 기대하라. 예를 들면, 누구와 식사 약속을 하는 것이다. 아침은 웬만하면 기분 좋게 보낸다. 그래야 하루가 기분이 좋다. 오늘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예컨대, 내가 내 마음대로 옷을 입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주체적인 일이다. 아침을 먹는다. 무엇이라도 먹는다. 먹어야 의지력도 생긴다. 아침에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한다. 하지 않았을 때 죄책감을 느낄 만한 일을 아침에 한다. 하루가 끝나갈 때 사람들은 자제력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노예였다가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가장 먼저, 당신이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 지 스스로에게 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루 동안 행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마치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려는 운동선수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자신이 원하는 운동종목을 먼저 정하는 일처럼, 그리고 그 운동에 몰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녁 없는 궁술은 무의미하다. 궁수가 쏜 화살이 과녁에 들어가는 이유는 과녁를 잘 정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과녁를 신중하게 정하고 그 과녁에 화살을 명중시키는 연습시간이다. 그 하루가 채워져 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런 목표 선정과 연습이 없다면, 그것은 '죄'라고 말하는 배철현 교수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바쁜 12월의 시작이다. 날씨가 추워져 몸은 움츠러들지만, 여기 저기서 나를 찾아 마음은 즐겁다. 오늘 오전은 나 자신이 책인 '휴먼 북' 강의를 한다. 사람들이 책을 찾는 것처럼, '나'를 책처럼 대출했다. 그리고 점심에는 와인과 음식의 조화, 프랑스어로 마리아쥐(mariage, 결혼), 영어로는 페어링(pairing, 음식과 와인의 조합) 강의를 하며 음식과 와인을 즐긴다. 살짝 낮술도 즐긴다. 이 번주까지 바쁘게 움직이고 다음 주부터는 겨울 준비를 할 생각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12월/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박한표(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