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마이 씨스터! [아는 언니]

걱정 마, 마이 씨스터! [아는 언니]

걱정 마, 마이 씨스터! [아는 언니]

기사승인 2020-06-13 08:3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언니란 무엇인가. 가수 선미는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 ‘선미네 비디오가게’에서 첫 초대손님으로 등장한, 자신의 어머니보다도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코미디언 박미선을 ‘미선 언니’라고 불렀다. 반면 올리브 ‘밥블레스유2’에선 1990년생인 배우 강소라가 1970~1980년대생인 송은이·김숙·박나래·장도연의 ‘인생 언니’가 됐다. 세대의 구분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 따위는 가뿐히 초월해버리는 이 ‘언니’라는 호명을, 선미와 장도연은 이렇게 정의했다. “멋있으면 다 언니야!”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언니’는 여성들 사이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위인 여성을 높여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을 뜻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언니’라는 단어는 긴 시간 여성들 간의 적대적인 감정을 함의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2015년 한 예능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서 두 여성 연예인이 말다툼하는 도중 나온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라는 발언은 수년간 방송가를 떠돌며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를 공고히 하는 데 사용됐다. ‘센 언니’는 또 어떤가. 일견 다양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듯한 이 표현은 그러나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수줍어하지 않거나, 애교스럽지 않은 여성을 한 데 뭉뚱그리며 오히려 ‘여성스러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여성들이 나누는 감정에 적대감이나 질투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퀸 와사비가 Mnet ‘굿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 제작발표회에서 말했듯 “요즘은 여자끼리 돕는 게 대세”다. 이 프로그램 3회에선 음악 시장의 주류를 이끌어온 아이돌 그룹의 춤 멤버 효연과 에코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비주류 언더그라운드 래퍼 슬릭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며 협업하는 과정이 나온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무대는 ‘걸그룹과 페미니스트는 어울릴 수 없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그리고 이들의 공연을 본 에일리는 말한다. “슬릭씨는 엄격하게 사시잖아요, 라이프 스타일이. 맞추기 어려운 분이신 줄 알았는데, 오늘 무대를 보고 열려있는 사람이구나 느꼈어요.” ‘여적여’라는 실체 없는 유령을 걷어내면, 서로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우정을 쌓으며 성장하는 여성들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자매애는 필연적으로 여성들끼리의 연대와 임파워링을 동반한다. ‘언니네 비디오가게’는 박미선을 ‘장수 예능인’으로 조명했지만, 박미선이 버티며 싸워온 대상은 시간뿐만이 아니다. 박미선은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남성 중심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살아남았다. 아이를 출산한 뒤에도 한 달여 만에 방송에 복귀했었던 그는 그러나 2014년부터 3년 동안 11개 프로그램에서 하차 혹은 종영을 맞아야 했다. ‘밥블레스유2’의 중심이 되는 송은이는 또 어떤가. 그는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의 대히트를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고, 지금은 가장 잘 나가는 여성 예능인으로 평가받지만, 한때 “송은이 씨가 일이 없어서 적성검사를 했다. 사무직이 나와서 43세의 나이에 엑셀을 배우고 있다”(MBC ‘무한도전’)는 일화가 나왔을 만큼 방송사의 부름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남성들이 ‘뇌섹남’ ‘요섹남’ ‘아재’ ‘형님’ 등 다양한 캐릭터를 부여받으며 요직을 꿰차는 동안, 여성들은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설 자리를 잃었다. ‘멋있으면 다 언니’라는 외침은 이 척박한 토양에서도 살아남아 성공한 여성을 선망하거나 숭배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같은 불공정을 경험한 여성들이 서로 힘과 용기를 주고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선미는 박미선의 이야기를 듣고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내가 버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선미를 롤모델로 삼는 또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은 선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영감을 받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언니가 되어주며 자매애를 동력 삼아 여성들은 나아간다. 더이상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거나 위협당하지 않는 곳으로.

wild37@kukinews.com / 사진=SBS ‘선미네 비디오가게’, Mnet ‘굿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 방송화면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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