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닌 사는 게 얼마나 편할까? 남의 단점, 멍청한 점 보일 때마다 안 참고 지적하잖아.” 둘째누나의 말에 막내는 가슴이 철렁한다. 큰누나만 아버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막내 혼자 알고 있어서다. 막내는 소심하게 말한다. “작은누나가 남은 아니지~” tvN 월화드라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족은 남이 아닐까. ‘가족’과 ‘남’을 분리해서 말할 정도로, 가족은 각별하고 가까운 존재일까. 아래의 기사는 ‘가족도 남이다’를 전제로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기 위한 올바른 대화법을 제시한다. 인용된 사례는 모두 ‘가족입니다’에서 가져왔다.
1. 선 넘지 말아요
진숙(원미경)은 아이를 갖지 않는(못한) 큰딸 은주(추자현)을 걱정한다. “아이 없으면 끈끈한 부부애도 안 생긴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부부의 문제이며, 부모님이 아니라 삼신 할머니가 와도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한편 태형(김태훈)이 사라지자 은희(한예리)는 친구 찬혁(김지석)을 데리고 태형이 있는 소록도로 향한다. 은희는 찬혁에게 태형이 성소수자임을 숨기고 은주와 결혼했고 은주가 이 사실을 알고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록도에서 찬혁을 마주친 은주가 화를 내자 은희는 “찬혁이가 알면 어때서? 품위 손상돼?”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태형의 성적 지향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밝히는 건 은주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동일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태형을 아웃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선의가 무소불위의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네가 선을 그었다고 서운해하기 전에 내가 선을 넘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자.
2. 상대의 노고를 무시하지 말아요
은주는 노동자인 아버지 상식(정진영)을 존경한다. 은주가 태형과 결혼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상식은 매달 50만원씩 7년 동안 모은 적금 통장을 은주에게 건넸다. 은주는 이 통장을 엄마 진숙에게 주면서 “7년 동안 이 돈 모으시려고 아버지가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만 하면 통장 보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은주는 상식이 7년 동안 50만원씩 모으는 동안, 바로 그 비상금 때문에 적은 생활비로 살림을 꾸려야 했던 진숙의 노고를 알지 못한다. 은주는 갑작스레 졸혼 통보를 받은 상식이 “몸과 마음이 다 무너질 수 있는 충격”을 받았을 거라며 진숙을 원망한다. 하지만 진숙이 졸혼을 준비하는 긴 세월동안 겪어야 했던 고통은 보지 못한다. 상식은 또 어떤가. 사고를 당하기 전, 그는 진숙이 감기 기운이 있다며 콜록거리자 “집에만 있으면서 감긴 왜 걸려?”라고 타박했다. 하지만 가사노동은 상식이 하는 화물 운송만큼이나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을 동반하고, 때문에 가정주부들은 손목터널증후군, 건초염, 석회화 건염, 퇴행성 관절염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 상대의 노고와 성취를 인정하지 않는 건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네가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고 궁금해하기 전에 내 할 일이나 제대로 하자.
3. 사과와 감사에 인색하지 말아요
진숙은 은주에게 죄 많은 엄마다. 상식의 소생이 아닌 은주를, 진숙은 자신이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은주만 데리고 가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훗날 은주가 당시를 떠올리며 원망을 늘어놓자 진숙은 진실을 밝히며 “내가 죄가 많다”고 사과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설령 그 효과가 단숨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상대의 해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진다. 또한 제대로 감사하는 것은 제대로 사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은주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돈을 버느라 “20대를 날려먹었”다. 은주는 돈 못 버는 상식보다 고맙단 말 한 마디 않던 진숙에게 더욱 서운해한다. 진숙은 그런 은주에게 “아무것도 못해주는데, 말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뒤늦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이것이 은주의 마음에 남은 오랜 앙금을 풀어줄 수 있을지는 아직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건 나의 바람일 뿐이는 점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말뿐이라고 느껴도, 말이라도 하자.
4.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가족입니다’의 가족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진숙은 상식과 영식(조완기)의 사연을 모르고, 은주·은희 자매는 왜 어머니/아버지가 왜 동생/언니만 편애했는지 모르며, 결정적으로 상식은 자신이 가족에게 어떤 남편이자 아버지였는지 모른다. 이들의 진짜 문제는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섣부른 판단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남긴다. 은주는 진숙이 졸혼을 선언하자 돈은 어떻게 벌 거냐고, 평생 집안일만 했으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진숙은 이미 요양보호사가 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진숙은 은주에게 되묻는다. “내가 왜 못해. 네가 날 알아?” 한편 은희는 상식이 야간산행에서 사고를 당했을 당시 우울증약과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해한다. 은주는 그런 은희가 블루칼라인 아버지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은희가 아버지를 모른다면, 은주는 은희를 모른다. 네가 아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듯, 내가 아는 너도 너의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상대를 전부 아는 것보다 중요한 태도일 지도 모른다.
5. 때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도 있어요
서영(신혜정)은 과거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누가 몸을 스치기만 해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서영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서영이 “잘난 애인에게 차여서 성폭행범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영이 남자친구를 신고하려고 했을 때 그를 말리며 가둔 이도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서영에게 찬혁은 “잘못은 하신 거지만 너 보호하려고 그러신 거”라고 설교한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자식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며 부모의 모든 행동이 자식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태형의 성적 지향을 외면했던 태형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그는 태형의 커밍아웃을 무시하고 그에게 이성애자처럼 살 것을 강요하는 한편, 은주의 가정형편을 들먹이며 그를 통제하려고 한다. 이런 태형의 어머니 앞에서 ‘그래도 가족이니까’ 같은 주문은 통하지 않는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말과 행동 아래엔 언제나 사랑이 있다는 건 속임수다. 어떤 가족은 남보다 못한 사이이며 그래서 때론 대화하지 않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상처만 되는 관계라면 설령 그것이 가족이라도 끊어내는 것이 낫다.
wild37@kukinews.com / 사진=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