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친일파를 두둔하며 국가유공자 등을 홀대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른바 ‘친일파 파묘법(국립묘지법 개정안)’ 처리요구에 더해 수년째 제기되는 유공자들의 국립묘지 안장취소에 대한 법 개정요구는 묵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은 25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지난 19일 가진 면담 결과자료를 공개하며 비난의 화살을 겨눴다. 항단연에 따르면 이 대표는 ‘친일파 파묘법’ 당론채택을 요구하는 단체의 목소리를 묵살했다.
면담 당시 이 대표는 “실망스럽겠지만 민주당 내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많이 있다”며 “당론 채택은 어렵다”고 못 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진행 하더라도 이름은 순화돼야 하고, 대상자 선정에 대한 심의위를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법 개정에 반대하지 않지만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민주당 내에서 우선순위 합의사항에는 포함돼있지 않다는 현실도 귀띔하며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도 전했다.
이같은 민주당의 내심이 알려지며 국가유공자들 사이에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한 국가유공자단체 관계자는 “친일파는 현충원에 묻어두고, 정작 묻혀야할 국가유공자들은 심사에서 탈락해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영예성 훼손이 근거라면 친일파는?”이라고 반문했다.
현재 현충원 등에 안장되는 국가유공자 기준 등을 규정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국적 상실자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 ▲그 밖에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문제는 ‘영예성’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국립묘지법과 법 시행령 등에 따르면 영예성의 훼손 기준은 ‘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와 국가보훈처장과 국방부장관이 협의하여 정하는 바’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하위규범인 ‘국가보훈처령’으로 정한 ‘안장대상심의위원회운영규정’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으로 명시하고 있다. 상위법보다 하위규범이 더 포괄적인 심사규정을 두고 있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이 단체에 접수된 안장불가처분통지 상담사례 중에는 범죄사실은 없지만 수십년 전 병적기록부에 탈영기록이 잘못 기입됐지만 소명하지 못해 현충원 안장이 거부된 경우나, 생계곤란으로 범죄를 저질러 심사에서 탈락한 경우, 교통사고 등 단순사고로 인한 경우 등 유가족이나 주변에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들도 있었다.
게다가 안장심의위의 결정에 대한 이견이 있어도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경우가 행정심판이나 소송, 감사원이나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등의 결과에 따른 요구(권고)로 극히 제한적이어서 재심의 요청사례 자체가 드물다. 여기에 안장심의에 최장 2~3개월이 소요돼 국가유공자를 가매장 후 이장을 하는 등의 불편함도 초래되고 있다.
이에 이 단체 관계자는 “영애성 훼손이라는 불명확한 기준과 통일되지 못한 규정, 심의위의 일관성 없는 자의적인 심의로 많은 국가유공자들이 좌절감을 겪고 있다”며 “시일이 흐를수록 유공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법개정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유공자의 안장을 직접 관장하는 국가보훈처나 법을 개정해야할 국회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장 국회에는 수년째 문제제기가 이뤄졌음에도 관련 내용에 대한 개정안이 발의되지 않고 있다. 보훈처 또한 규칙개정이나 심의위 운영규정 개선 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가보훈처 예우정책과 관계자는 “영예성이라는 가치를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 몇몇 사건으로 인해 법원에서도 판단을 받았고, 해석의 자의성을 폭넓게 인정했다. 나아가 이의를 최소화하기 위해 10인으로 구성된 안장심의위원회가 판결문을 일일이 살펴보며 협의를 통해 결론을 내리고 있다”며 검토의사가 현재는 없음을 밝혔다.
덧붙여 “친일파로 판명 났지만 파묘에 대해서는 아직 정치권에서 논쟁이 있고, 이행방침이 정해지지 않아 현행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논란이 지속되며 안장이 거부된 국가유공자들의 반발과 낙심도 이해는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재심의 기준이나 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은 어려울 것 같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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