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내쫓고 폐기물매립장 들이고 … “우리는 2등, 3등 국민이냐?” [연천을 가다③]

두루미 내쫓고 폐기물매립장 들이고 … “우리는 2등, 3등 국민이냐?” [연천을 가다③]

인구감소 지역이 겪는 공통 문제 드러내는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옮기면 난개발 우려, 폐기물 매립장 계획 갈등 유발
천연기념물 두루미 최후의 보루 임진강 망제여울도 위협
대선 이후 매번 격차 더 확대... 농촌기본소득도 관심 엇갈려
소멸위기 저출산, 양극화 극복할 사회변화 큰 그림 실종

기사승인 2022-02-27 06:30:06

경기도 연천 전곡읍 고능리 102번지 일대에 폐기물매립장 예정부지에서 지난해 10월 2일 매립장 건립사업주인 (주)북서울의 의뢰를 받은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 관계자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 시민공모전 심사위원들에게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여기는 멸종위기종 두루미에게 최후의 보루다. 경기도 연천군의 임진강 망제(빙애)여울부터 남방 군사분계선 직전의 필승교 구간. 천연기념물인 두루미가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은 철원이지만, 대략 1월 중순 이후 한겨울엔 달라진다. 철원의 논 습지가 얼어버리면 두루미들은 연천의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북쪽 망제여울을 마지막 서식처로 삼는다. 망제여울을 흐르는 물은 기온이 영하 20℃ 이하로 떨어져도 얼지 않기 때문이다. 물이 있으면 삵이나 담비 등 천적의 접근이 어렵다. 망제여울 주변에는 논이 없지만 율무밭이 있고, 주민들이 뿌려주는 먹이도 풍부하다. 무논 조성, 먹이주기 등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이 지역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 수는 늘고 있다.

위험신호도 있다. 망제여울의 두루미들 중 일부가 민통선 바깥의 도로, 주택가 등과 인접한 임진강변으로 잠자리를 옮겨간 것으로 지역 환경단체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불빛과 소음이 있는 곳으로 잠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서식지에서 환경훼손과 교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에서는 비닐하우스 등 시설 경작지가 늘고, 농경지 불법매립·성토, 벌목도 이뤄진다. 철원과 연천에 이어 두루미의 세 번째 주요 서식지인 파주에서는 두루미가 먹이를 찾는 논이 크게 줄고 있다. 환경운동연합과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주관으로 지난해 12월 19일~20일 열린 ‘한반도 두루미 보호대책 세미나’에서 이런 사실이 지적됐다. 김경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DMZ위원장은 “연천 민통선은 땅을 점유하다시피 한 몇몇 사람이 겨울에 축산분뇨나 쓰레기를 내다 버리거나 인삼밭을 불법 조성해도 거의 제한받지 않아 훼손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DMZ 일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군 당국과 협의해 민통선을 북쪽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서 해제된 지역의 땅주인 상당수가 외지인이어서 마구잡이 개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망제여울까지 민통선에서 제외될 경우 두루미는 한반도에서 더 이상 겨울을 오롯이 보낼 수 없게 될 것으로 지역 환경단체는 걱정하고 있다. 김경도 위원장은 “군남댐~필승교 구간을 천연기념물 보전지역으로 지정해 적극 보호해야 한다”면서 “이 구간의 범람원 가운데 두루미 서식지인 땅 약 5만평을 기업체나 독지가 등이 기부를 전제로 사들이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할 만하다”고 말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지키려는 연천의 노력은 도시지역의 님비(NIMBY)현상 때문에도 좌절을 겪는다. 혐오시설이나 기피대상 인프라를 내 지역에 수용하지 않으려는 세태를 일컫는 님비 탓에 발전 및 송전 설비, 폐기물소각장이나 매립장 등은 이리저리 떠밀린 끝에 결국 인구가 적고 고령화된 농촌으로 들어온다.

연천에도 전곡읍 고능리 102번지 일대에 사업장폐기물매립장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노스풀 CC 골프장이었던 이 일대 땅 4만9877㎡를 매입한 주식회사 북서울은 2018년 폐기물사업계획서를 한강유역환경청에 제출했다. 환경청은 2020년 6월 이 곳이 폐기물 매립장으로 적합하다고 통보했다. 고능리·양원리 일대 주민 90%(206명)도 매립장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연천군 의회는 환경청 조치에 반발하며 해당 체육시설 부지의 도시계획 용도변경을 하지 않고 있다. 연천군 사업장폐기물 매립장 설치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는 “세계지질공원 인증 지역에 매립장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며 연천군에 주민 5459명의 반대 서명부를 전달했다. 주민대책위는 국내 네 곳뿐인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지역(1164.74㎢) 안에 들어가 있는데다 한탄강과의 거리도 1㎞에 불과해 환경 훼손은 물론 일대 식생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지난해 11월 고능리 산업폐기물 매립장 예정지 일원의 산지를 ‘이곳만은 지키자’ 시민공모전의 환경기자클럽상 수상지로 선정했다. 이 단체는 이곳이 생태보전 1등급 지역으로 팔색조 대여섯 마리를 포함해 국가지정 멸종위기 조류 6종, 국가지정 멸종위기 양서류 1종이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연천의 사업장폐기물 매립장이 타당성이 있느냐는 질문과는 별개로 이런 기피시설의 입지가 물색되고, 추진되고, 결정되는 방식에서 과소지역 주민들의 소외감과 지역 불균형이 증폭된다. 폐기물매립장을 둘러싼 찬반주민 간의 갈등을 포함한 연천의 고충은 전국의 과소지역, 농산어촌이 겪는 공통적 문제다. 수도권 대도시에서 크게 늘고 있는 산업폐기물을 결국 농촌에서 처리하겠다는 세태와 관행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2등, 3등 국민이냐?”는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경도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DMZ위원장이 연천군 중면 횡산리의 율무밭에서 지난해 11월 27일 두루미에게 줄 율무를 수확하고 있다. 한국 내셔널트러스트는 2019년에는 회원 191명이 모금한 돈으로 횡산리 3168㎡를 사들여 율무농사를 짓고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를 펼치고 있다.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제공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 불균형 완화 대책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시한 농촌기본소득이 한때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 때 추진했던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연천군 청산면 주민들은 다음 달 말부터 월 15만원(연간 180만원)의 농촌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받는다. 2026년까지 5년간 진행되는 실험이다.

그러나 청산면 주민을 제외하고는 연천군민들의 관심이 크지 않다고 연천농협 간부 출신인 김영모씨(가명)는 말했다. 청산면에서 숙박업을 하는 박지훈씨(가명)는 “관심은 있지만 전국의 모든 주민에게 왜 다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소멸위기 지역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인구증가 가능성 등을 따져서 필요한 곳에만 실시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농업을 하는 윤진호씨(가명)는 “깨어 있는(의식 있는) 사람들은 쓸 데 없이 왜 돈을 주냐”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고 나면 수도권 위주의 개발공약 때문에 지역 간 격차는 확대되기 일쑤다. 균형발전은 선거철에만 반짝이는 수사에 불과해졌다. 지방소멸 위기 외에도 저출산과 각 부문의 양극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세우려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세제의 개편을 포함한 세정 개혁이 필요하고,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개편도 시급하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은 어차피 인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 대선에서도 예컨대 30년 후까지 대비하는 국가 비전과 큰 틀의 의제를 둘러싼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에 연천처럼 소외되는 지방자치단체는 늘어만 갈 것이다.

임항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연천을 가다①] 소멸위기 소도시 주민에게 대통령선거란?
[연천을 가다②] 생태관광으로 소멸 위기 넘어선다


지역 기획 연천을 가다 끝. 
임항 기자
fattykim@kukinews.com
임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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