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달라졌다. 집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잘생긴 FBI 요원 잭(다니엘 헤니)을 민영(임윤아)이 만나는 순간 확실해졌다. 잭은 안정된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감독 이석훈) 세계관 근간을 흔드는 폭풍 같은 존재다. 림철령(현빈)과 앙숙으로 등장해 공조 수사를 더 어렵게 하고, 민영과 철령 사이에도 끼어든다. 분명 빌런의 역할인데 밉지 않은 잭이 어떻게 제 자리를 찾아가는지, 얼마나 의외의 상황을 만들어내는지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국어가 가능한 미국인 잭이 이렇게 친숙하고 반가울 수 없다. 잭을 연기한 배우 다니엘 헤니에겐 한국 작품으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최근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과거 MBC ‘내 이름은 김삼순’부터 KBS2 ‘봄의 왈츠’, 영화 ‘마이 파더’, ‘스파이’ 등 여러 한국 작품에서 활동한 덕분이다. MBC ‘나 혼자 산다’까지 출연했으니 한국 연예인이 분명하다. 지난 6일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화상으로 만난 다니엘 헤니는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과 ‘공조’의 인연을 설명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영화 ‘스파이’를 할 때 이미 윤제균 감독님이 ‘공조’ 얘기를 꺼내셔서 알고 있었어요. 촬영을 시작하기 3~4개월 전에 대본을 받았어요. 처음엔 작은 배역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비중이 크더라고요. 책임감과 약간의 압박감을 느꼈어요. ‘공조’를 재밌게 봐서 당연히 속편에 출연하고 싶었어요. ‘공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 중 하나거든요. 어제도 다시 봤는데, 다시 봐도 재밌는 영화더라고요. 한국영화가 잘하는 점이 장르를 비트는 거예요. 코미디와 액션, 드라마까지 다 넣어도 재밌게 나와요. 어두운 것부터 경쾌하고 재밌는 것도, 진지한 것까지 있어요. ‘공조2’를 하면서 영광이라고 느꼈고, 당연히 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걱정한 건 한국어 대사였다. ‘공조2’에서 잭은 자유자재로 한국어를 말하는 인물이라 대사량이 많았다. 한국어로 일상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감정도 담고 다른 배우와 호흡도 해야 하는 연기를 한국어로 하는 건 다른 문제다. 미국에서 혼자 거울을 보고 연습했고, 이석훈 감독도 도움을 줬다. 다니엘 헤니는 한국어를 연습하면서 잭이 자신과 비슷한 과거를 살았을 거라 생각했다.
“잭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와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잭도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고, 문화적 정체성 고민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한국에 와서 철령, 진태(유해진)와 형제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이 그를 완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예전엔 제 모습에서 서구적인 면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래야 안전하다고 느꼈거든요. 한국에 오면서 제 뿌리와 연결된 느낌을 받았고, 이제 한국이 제게 큰 부분이 됐어요. 잭이 짜증나고 시끄러운 미국인으로 등장했다가, 점점 열린 한국인으로 변해가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현빈과 다니엘 헤니가 같은 작품에서 다시 만난 사실이 화제였다. 무려 17년 만이다. 오래 전부터 한국 작품에 출연하고 한국 배우로 활동한 다니엘 헤니에게 K콘텐츠의 전 세계적 인기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한국 작품의 장점과 매력을 가장 잘아는 만큼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처음 미국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한국 작품의 문이 조금 열려 있었으면, 지금은 정말 활짝 열려 있어요.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신기하고 당연해요. 한국 작품은 완성도뿐 아니라, 이야기에 강점이 있거든요. 제가 모델 활동을 하면서 광고를 찍을 때, 미국 친구들이 한국 광고를 보고 퀄리티에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일하는 분들이 황동혁 감독과 방금 미팅했다고 흥분하며 저한테 그를 아는지 물었어요. 제가 2007년 영화 ‘마이 파더’를 황 감독님과 같이 했거든요. 그땐 황 감독님도 저도 어렸고 막 시작하는 단계였어요. 그때부터 감독님의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걸 알았죠. 지금 미국에서 황동혁 감독님 이름만 말하면 모두 안다는 게 신기하고 좋아요. 앞으로 한국 작품들이 미국에서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다니엘 헤니는 ‘공조2’를 위해 직접 긴 홍보 활동 기간을 미국 소속사에 요청했다. 그동안은 한국 일정을 잘 안 빼줘서 무대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팬들과 만남이 정말 좋다는 다니엘 헤니에게 한국 팬들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한국 팬들을 만나는 건 항상 즐거운 시간이에요. 무대인사를 하면 관객들의 에너지를 바로 느껴요. 팬들과 인사하고 허그 하는 건 제게 가장 좋은 시간이에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무대 위에서 질문에 대답하는 건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지만, 팬들을 만나서 인사하고 소통하는 건 정말 즐거운 시간이죠. 한국 팬은 모든 걸 저에게 주시는 분들이라 생각해요. 항상 감사해요. 미국에서도 한국 배우가 제 정체성이라고 얘기해요. 한국에서 제게 많은 걸 줬고, 모든 걸 시작했어요.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죠. 팬들이 아직도 절 응원해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