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글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농촌에서 10여년을 보내는 동안 몸으로 하는 일에 많이 익숙해 졌다. 집안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일들을 스스로 해결하면 의외로 만족감이 크다.
다른 하나는 농촌에 사는 동안 경험의 폭이 많이 넓어졌다. ‘불친절’ 경험도 그 중 하나인데 ‘내가 외지인이고 평상시 옷차림이 작업복이라 주변사람들이 불친절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내 생각을 적었다.
일부 독자들을 화나게 했던 것은 두 번째 내용인 것 같다. 사람을 옷차림(외관)으로 평가하거나 친소관계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농촌이나 도시나 다르지 않다. 그동안 내 처지가 바뀐 생각은 못하고 여기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 탓했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실제로 나는 글을 쓰는 동안에 그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독자들 중에는 내 ‘성찰’ 보다는 ‘농촌 사람들이 불친절하다’ ‘농촌 사람들이 유난히 옷차림을 보고 사람을 판단 한다’는 뜻으로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내 글이 그렇게 읽혔다면 뭔가 그렇게 읽힐만한 구석이 있었을 테니 글을 쓴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뜻으로 쓴 글은 아니었다.
지난 주말에 이 글을 놓고 지인 몇 명과 대화를 나눴다. 한명은 30대 초반의 젊은이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직업상 젊은이들과 접촉이 많기 때문에 비교적 그들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인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 글에서 불친절이 너의 처지가 바뀐 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성찰’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전에 언급된 ‘사람들이 옷차림을 보고 다른 사람을 평가 한다’는 말에서 이미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사람을 평가하는 요소에는 옷차림 말고도 무수히 많다. 너는 그 요소들 중에 옷차림을 꼭 집어서 마치 그 것이 평가 요소의 전부인 양 적었다. 그것은 조심성 없는 꼰대들의 어법이다. 만약 거기서 더 나아가 ‘사람을 옷차림만 보고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든다면 그런 태도야 말로 꼰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똑 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더라도 각자 느끼는 바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성격, 특성 등을 섣불리 규정 하거나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옷차림을 보고 다른 사람을 평가 한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너는 그 글로 네가 꼰대라는 사실을 웅변한 것이다.”
그리고 30대 초반의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꼰대라고 하면 왜 싫어요? 그것은 그냥 그 사람의 의견일 뿐인데. ‘아 저 사람은 나를 그렇게 보는 구나’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않나요? 나는 그런 말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데.”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젊은 사람들은 남이 날 어떻게 보는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자기를 꼰대라고 하면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난 아닌데’라고 하면 끝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 어른들은 누가 자기를 꼰대라고 하면 상처를 받겠구나. 그것은 몰랐네.”
사실 ‘옷차림’이라는 말을 사람의 외관이나 객관적인 조건 등을 포괄하는 상징적인 어휘로 사용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꼰대성’이 면책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단정적으로 말한 것은 사실이니까.
지인들을 통해 들은 요즘 젊은이들의 타인의 의견에 대한 태도나 감수성은 놀라웠다. 마치 우리 세대에서 인권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만 골라놓은 것이 요즘 젊은이들 아닌가 싶을 정도다. 확실히 선진국에서 태어난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세대와는 여러모로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꼰대’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혹시 지난주에 이 꼰대의 섣부른 의견 때문에 ‘의문의 1패’를 당하신 분들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 지난주에 썼던 글 때문에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기에 드리는 말씀이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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