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그 선배와는 인연이 깊다. 같은 시기에 공무원을 했더라도 부처가 워낙 다양해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데 공정위와 인권위에서 두 번이나 같이 근무했으니. 두 기관 모두 그 선배와 관련 없이 내가 그곳에 갔더니 선배가 거기에 있었다.
같은 기관에 근무하는 동안 그 선배와 일을 같이 했던 기억은 없다. 흡연실 오가는 길에 만나 얘기를 나눈다거나 1년에 서너 차례 송년 모임 같은 곳에서 자리를 함께한 정도였다. 그런데도 내가 그 선배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선배가 공정위 근무 당시 조사 분야에서 소위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인권위로 자리를 옮기고도 공정위 요청으로 조사관들을 모아 놓고 조사에 관한 특강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 선배는 조사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굵직한 성과를 많이 냈다. 혐의가 있는 곳에 투입하면 반드시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왔으니까. 주변에서는 그 선배의 조사 성과를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고 조사의 귀재라고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선배의 조사과정을 듣다 보면 그만큼 극적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어떤 기업에 조사를 나갔는데 사무실에 급하게 자료를 치운 흔적이 있더란다. 그래서 조사 중에 주변을 한 바퀴 돌다 보다가 왠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갔더니 화장실 천장에서 증거 자료가 나왔다는 식이다.
선배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을 운이 좋았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감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극적인 경우가 한두 번에 그쳤다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선배의 경우에는 조사를 나갈 때마다 매번 이렇게 운 좋은 경우가 발생하니 단지 운이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 선배는 나보다 2년 후에 인권위를 퇴직하고 지금은 서울의 한 구민회관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한문은 언제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시간 날 때마다 독학으로 깨우쳤다고 한다. 하긴 인권위 근무 당시에도 인도네시아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참 독특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카리나와 플루트라는 악기도 독학으로 터득해 가끔 노인 회관 등에서 연주회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같이 온 친구분은 선배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경기도 안양시 인덕원에서 두부 공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와 선배가 오랜만에 만나 옛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말없이 고기를 굽거나 간간이 끼어들어 재미있게 듣고 있다고 표시함으로써 우리가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성실하게 살아 온 흔적이 느껴지는 편안한 인상을 준 분이었다.
선배와 얘기를 나누면서 오랜만에 얼큰하게 취했다. 살아가면서 힘을 줘야 할 때는 힘을 주고 힘을 빼야 할 때는 뺄 줄 아는 선배의 유연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음악도 강약이 있어야 듣기 좋듯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힘을 주는 것만 알고 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강약이 없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지루하다.
두 분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고 여수 쪽으로 내려갔다. 나는 뱀사골로 들어가 성삼재를 넘어 구례 쪽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단풍의 끝자락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줬다. 선배는 우리 집을 떠난 후 몇 차례 전화했다. 여수, 강진, 해남, 진도를 거쳐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다.
두 사람이 다녀간 후 여운이 길게 남았다. 무엇보다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부러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친구와 둘이 여행을 가 본 기억이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가 그리워진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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