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사본부’, ‘그알’과 출발점부터 달랐죠” [쿠키인터뷰]

“‘국가수사본부’, ‘그알’과 출발점부터 달랐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3-29 06:00:13
웨이브에서 새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를 선보인 배정훈 SBS PD. 웨이브

얼마 전 배정훈 SBS PD는 수년간 알고 지낸 지인들의 새로운 표정을 봤다. “웬일로 우리를 이렇게 멋지게 찍어?” “갑자기 우리를 칭찬한다고?” 의아함과 뿌듯함이 어우러진 얼굴이었다. 배 PD가 웨이브에서 선보인 새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를 보고 이들 사이에서 전례 없는 반응이 나왔단다. 배 PD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로 인연을 맺은 경찰들의 생생한 반응이다. “‘그알’에서 일 못 한다고 꾸짖기만 하더니 어쩐 일이냐 하더라고요.”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동 모처에서 만난 배 PD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독 ‘처음’이 많은 작업이었다. 기획부터 촬영까지 모든 게 ‘그알’과 달랐다. ‘그알’은 PD가 카메라 안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탐사보도 콘텐츠다. 반면 ‘국가수사본부’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수사 과정 전체를 아우른다. 배 PD는 ‘수사 현장을 따라다니는 막내 형사 시점 같다’는 시청자 반응에 감탄했다. 그의 연출의도를 관통한 문장이다. “‘그알’은 사건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다가가며 핵심을 파고들어요. 제작진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죠. ‘국가수사본부’는 적절한 거리 두기가 생명인 콘텐츠예요. 상황을 함께 관찰하며 생동감을 전하려 했어요.”

‘국가수사본부’는 ‘그알’과 접근 방향부터 제작 방식까지 판이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파헤치는 게 아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을 무기한 기다려야 했다. 편성기간에 쫓기는 지상파에선 제작할 수 없었다.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촬영을 시작했다. 제작진은 촬영보다 수사가 우선이라는 대원칙을 세우고 현장에 기민하게 따라붙었다. 기껏 찍어두고 공개하지 못하는 분량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국가수사본부’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배 PD는 이를 ‘반작용’이라고 표현했다.

‘국가수사본부’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 모습을 담아 호평을 얻고 있다. 웨이브

“‘그알’을 연출하며 경찰 잘못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 이야기를 담곤 했어요. 하지만 경찰이 묵묵히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들을 훨씬 많이 봤거든요. 이들의 노력을 외면하려 한 건 아니에요. 다만 프로그램 방향과 어울리지 않아 시선을 둘 수 없었죠. 사석에서 경찰 지인들을 만날 때 불만을 들은 적도 여럿 있어요. 잘못한 것만 혼내고 잘한 건 관심도 안 준다고요. 워낙 박수받지 못하는 조직이잖아요. ‘국가수사본부’는 경찰 노고를 ‘그알’ 반대편에서 비춘 콘텐츠예요. 잘해도 본전인 경찰들의 값진 이야기를 조명하려 했죠.”

처음엔 경찰 조직에서도 기획의도를 쉽사리 믿지 않았단다. 배 PD가 기획안을 보여줬을 때도 낯설어하는 반응만 돌아왔다. 콘텐츠가 베일을 벗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경찰을 멋있게 비추는 방송이 없었대요. 칭찬이 낯설다고 하더라고요. ‘국가수사본부’ 같은 콘텐츠가 정말 필요했단 걸 실감했어요.” 배 PD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노력하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찬사를 보낸 이유다. 

설득 과정은 길었지만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다. 기다림은 다큐멘터리 PD의 숙명이었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경찰관 섭외부터 난항이었다. 작년 3월에 기획을 시작해 6월부터 반년을 꼬박 매달렸다. 함께한 제작 인력만 50명에 육박한다. 제작진은 있는 그대로를 담으려 했다. 각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경찰관의 일상을 관찰하다 사건이 일어나면 따라붙었다. 편집 역시 경찰의 고민과 노력이 잘 묻어나도록 신경 썼다. 쓰지 못하는 분량이 많아도 뿌듯했단다. 배 PD의 지휘 하에 ‘국가수사본부’는 모든 회차에 공익적인 목적을 담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인터뷰 중인 배정훈 PD. 웨이브

“‘국가수사본부’는 ‘그알’과 달리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요. 정확히는 경찰이 주인공인 콘텐츠죠. 과거에는 멋진 경찰을 보여주려면 영화적 상상을 가미해 날렵하게 격투하는 모습을 부각하곤 했어요. 하지만 실제 현실엔 멋보다 희로애락이 주를 이루잖아요. 자연스러운 사람 이야기에 경찰이 주인공이라면 파괴력이 더해지리라 생각했어요. 막내형사를 두고 간 에피소드만 봐도 그렇잖아요. OTT여서 다양한 이야기를 더 자유롭게 담을 수 있었어요.”

배 PD는 시사교양 영역이 OTT 플랫폼으로 자리를 넓힌 최근 분위기를 반겼다. 얼마 전 MBC 교양국 소속 조성현 PD가 만든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OTT와 시사교양의 만남, 여기서 그가 주목한 건 표현 수위와 관련한 논의다. 배 PD는 ‘국가수사본부’를 만들며 SBS와 웨이브 각사 법무팀과 수뇌부, 제작진 등 다각도에서 검토를 거쳤다. 피해자 유족과도 대화를 가졌다. 대역을 활용하며 실제 범죄자 음성을 넣기도 했다. 제작진의 가치 판단을 거쳐 적정선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는 “모든 변화는 비판에서부터 시작한다”면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다큐멘터리 제작과 관련한 사회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경찰을 위해 만든 ‘국가수사본부’의 진심이 오해 없이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국가수사본부’의 핵심은 사건이 아니에요. 저희는 그 어떤 장면도 여과 없이 담지 않았습니다. 혈흔이 낭자한 화면은 빨간색을 의도적으로 배제했어요. 사건 현장은 대체로 맥락을 지워 참혹함을 줄이려 했고요. 주제의식만 잘 전달하면 대략적인 표현으로도 확실한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 ‘국가수사본부’가 주목한 건 잔인한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찰입니다. 잘못은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잘했을 땐 응원해줘야 하는 게 국민 역할이잖아요. 경찰이 하는 일을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드리고자 만든 콘텐츠예요. ‘국가수사본부’로 우리를 위해 애써주는 경찰분들이 더 많은 보람을 느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배정훈 PD. 웨이브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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