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는 전근대시대 주연야화(晝烟夜火)의 방법으로 지방 연변에서 한양까지 노선을 따라 긴급한 신호를 전달했던 군사통신시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5개의 직봉 노선(간선 노선)이 있었다. 경남지역은 2로 직봉 노선이 지나갔으며, 직봉은 경남 각지에서 이어진 간봉 노선(지선 노선)과 연결됐다. 거말흘산 봉수대는 2로 직봉의 간봉 9노선에 포함된 봉수대이다.
봉수는 기능에 따라 경봉수, 연변봉수, 내지봉수로 구분할 수 있다. 경봉수는 한양에 설치된 중앙봉수이고, 연변봉수는 국경선을 따라 설치된 최전방봉수이며, 내지봉수는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내륙지역 봉수를 말한다. 거말흘산 봉수대는 내지봉수에 해당한다.
연변봉수와 내지봉수는 구조적인 차이를 보인다. 연변봉수는 적침의 상황을 파악해 주변 수군진(水軍鎭)과 한양으로 보고하는 요새와 같은 기능을 했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연변봉수에는 연대(煙臺)라는 시설을 만들어 운영했다.
연대란 토석혼축(土石混築)으로 만든 높은 돈대시설을 말한다. 그 위에 불과 연기를 피울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으며, 봉수군이 적군의 동태를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연대는 연변봉수의 대표적인 시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연대가 내지봉수인 거말흘산 봉수대에서도 발견됐다. 거말흘산 봉수대에 연대가 갖춰져 있다는 것은 군사적·교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거말흘산 봉수대는 서부 경남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시설이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연대 이외에도 생활시설(生活施設)과 거화시설(擧火施設)로 연결되는 오름시설, 주연야화에 필요한 많은 물품을 보관했던 고사(庫舍), 불씨 등을 보관했던 소성유구(燒成遺構), 생활에 필요해 판 구덩이인 수혈(竪穴) 등도 함께 발견됐다.
이뿐 아니라 봉수군이 근무를 서면서 사용했던 많은 유물이 있으며, 이중 백자 발 4점과 접시 2점이 온전한 상태로 포개져 출토됐다.
이러한 유구(遺構)와 유물(遺物)의 발견은 봉수군이 봉수대를 운영했던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옥진숙 문화관광과장은 “이번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향후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연차적 발굴을 통해 좀 더 정확한 성격을 규명해 도 지정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거창=최일생 기자 k755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