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내버려 둔 미래로 가지 않을 것이다”
제22대 총선이 8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총선에서 9.67%를 득표했던 정의당은 지지율이 1월 2주차 기준 1.7%(리얼미터)까지 추락했다.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를 요구하고 있어 연동형 유지를 전제로 한 위성정당 방지법 합의 가능성은 극히 낮아졌다.
지난달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병립형으로의 회귀는) 제3정당을 아예 원외로 퇴출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 내부와 외부에서는 “진보 정치가 몰락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들린다.
안팎으로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약자를 위한 꺾이지 않는 목소리’가 되고자 하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쿠키뉴스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지난 의정 활동 소회를 듣고 대표 법안의 진척 상황, 당 내외 상황에 대해 질의했다.
아래는 장 의원과의 일문일답.
Q 지난 회기 동안 의정 활동을 돌아본다면
지난 4년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이었다. 한국은 산업화, 민주화 다음으로 다원화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사회 내 주류 목소리로 대변되지 않았던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의 목소리나 기후 위기 문제를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이런 가치를 4년 동안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1대 국회가 시작되고 한 달 만에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지만, 지난 4년 동안 차별금지법은 단 한 번도 관련 상임위에서 제대로 토론된 적 조차 없다. 제19대 대선 때만 해도 후보들이 앞다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제20대 대선에서는 페미니스트 후보를 심상정 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후위기특별위원회가 설치됐지만 유명무실하다. 그 어떤 아젠다 하나 제대로 진전시키거나 논의하지 못한 상태다. 다원화로 나아가기 위한 가치를 제시했지만 결실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시간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Q 청년들은 장 의원을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보람됐던 순간이 많다. 진보정당 일원으로 어떤 현장에서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일이 많았다. 특히 소수자이고 약자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권리를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요구하고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현장에 함께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이동권 투쟁을 함께 했던 순간들이다. 전장연 이동권 투쟁의 역사는 20년이 넘는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같은 이동할 권리를 누릴 수 없었던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그런데 정치권이 사과하기는커녕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을 이제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비문명적인 시위라고 폄하하고 있다. 그런 것에 맞서 현장에서 함께 싸우는 활동가들 곁을 지켰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지난해 5월 가정의 달에 가족구성권 3법이라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는 법안을 한국 최초로 발의했다. 그 누구도 국회 안에서 제대로 이야기 하지 않을 때 직언한 것이 소중하게 기억되는 시간이다.
Q 우리나라가 ‘기후악당’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 어떤 과제를 해내야 할까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 정부 차원의 탄소중립 기본법에 의거한 탄소 중립 기본 계획이 만들어졌다. 그 계획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없는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는 거의 아무것도 줄이지 않다가, 임기가 끝난 다음에 폭발적으로 줄인다는 내용이다. 벼락치기 방학 숙제와도 같다. 이 계획부터 전면 수정해 즉각 큰 폭으로 탄소를 줄일 수 있도록 완전히 틀을 바꿔야 한다. 또한 한국은 화석연료 중독 국가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은 지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재생에너지를 3배로 늘려야 된다는 협약에 동의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는 대신 신규 석탄화력 발전소를 짓는 등 굉장히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격적인 재생에너지 투자와 에너지 기반 확대,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Q 장애인 활동 지원 24시간 보장법, 가족 구성권 3법, 혼인평등법, 비혼 출산 지원법, 생활동반자법 등 대표 법안, 통과까지 난관 많아…이에 대한 의원실 입장은
양극단 대결 정치가 심화하며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국회가 의제의 무덤이 된다는 점이다. 제가 발의했던 장애인 활동 지원 24시간 보장법이라든지 아니면 가족 구성권 3법 혹은 차별금지법 이런 법안들이 토론 자체가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은 21대 국회 안에서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법안을 발의해도 소관 상임위에서 단 한 번도 토론되지 않은 상태로 사장되는 모습을 보기 때문에 시민들 입장에서는 ‘발의가 무슨 의미냐’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찬성할 자유도 반대할 자유도 있다. 하지만 토론되지 않는 것은 국회가 일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정말 각성해야 한다.
Q 가장 대표적인 법안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실현 가능성과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발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낙관한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에 대한 차별 금지 원칙을 만들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원화된 사회이고 점점 더 다원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떻게 다양한 존재들과 함께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정치는 답을 내놔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힘 있는 사람들이 힘 없는 사람을 너무나 쉽게 차별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발전하는 것을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우리는 몇몇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경험하고 있다. ‘여성과 장애인은 차별하면 안 돼’라고 하지만 ‘성소수자는 차별해도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유를 막론하고 동료 시민을 공적 영역에서 차별하면 안된다는 원칙이 있어야 우리가 다원화된 사회, 차별 금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차별 금지 원칙 없이는 점점 더 퇴보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언젠가 차별금지법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Q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활동을 오랜 기간 했다. 활동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나
조세 정치 측면에서 한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과두제 정치다. 한국은 한 해 예산이 650조원에 달하는 국가다. 조세에 관한 법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650조원의 사용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 정부 고위 관료 몇 명 그리고 양당 고위 실권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회의록 한 줄 남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매년 예산이 결정되고 있다는 게 제가 지난 4년 동안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확인한 한국 조세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Q 마포 지역 정치인으로서 장 의원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지역민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싶나
평범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오다 꿈이 있어 정치를 시작했다. 장애가 있든, 가난하든,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어떻든 누구라도 우리 사회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무사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수 있는 그런 미래를 갖고 싶다는 꿈이다. 그 꿈은 저만의 꿈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보편적인 시민들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출마할 마포구도 마찬가지다. 저의 꿈 이야기를 구민께 직접적으로 드릴 수 있게 된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말씀드린다면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거라고 믿고 싶다.
Q 일각에서는 장 의원이 소수만 대변한다고 비판한다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오해가 소수를 대변하는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정확하게 대변하고자 하는 것은 취약함이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삶의 어느 국면에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기로 태어나서 노인으로 죽어가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우리는 늘 삶에서 누군가에게 약한 존재로 적절하게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현재 정치는 오로지 강한 존재, 이기는 존재에게만 인간답게 살아갈 기회를 준다. 연약함을 가지고도 존엄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대변하는 것이 저의 정치다. 저는 소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약함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정의당 탈당 의사를 밝힌 류호정 의원은 ‘한국 시민은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의 의석을 갖고,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법안을 내면서, 우리가 가장 진보적이라 자위하는 정치를 필요 없어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변화들이지만 당시 관점에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던 것들이 있다. 노예제 폐지 등이 그렇다. 당장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하고 법안을 발의하는 것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첫걸음을 내딛어야 천걸음도 갈 수 있다.
Q 당이 진보판 선거연합 정당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내부 비판에 대한 생각은
정의당 재창당은 총선에서 선거연합 정당으로 갈음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을 다시 설레게 만드는 재창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총선 국면에 선거연합 정당을 마련하기로 당대회를 통해 지난주에 결정이 됐다. 그 누구도 가치를 이야기하지 않는 이번 총선 판에서 명확하게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말해야 한다.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지지할 만한 내용을 만들어 내는 게 저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Q 재선됐을 때 제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국회에 재입성하게 된다면 다시 국회 개원 한 달 만에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다.
Q 4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의원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장혜영의 진솔한 심정이 궁금하다
신데렐라 같은 기분으로 살고 있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 국회의원으로서 시민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약자의 곁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 모든 역할을 끝내고 다시 집에 돌아오면 저는 6년차 탈시설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30대 여성이 된다. 제가 하지 않으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 빨래와 청소 등 일상을 마주하면서 제가 서 있는 자리를 매일 자각했다.
꿈과 현실의 괴리가 저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 고통이야말로 제가 다시 한 번 현실을 마주하고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고 있다. 잘 살고 싶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잘 살고 싶은 마음, 그게 결국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Q 원외로 밀려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지켜봐주는 유권자에게 한 마디 한다면, 총선을 잘 치르겠다는 각오도 좋다
이번 총선은 ‘진짜 미래’와 ‘가짜 미래’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는 결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내버려 둔 미래로 가지 않을 것이다. 진짜 미래를 위한 싸움에 굳건히 투표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최근 절망감에 휩싸이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아무리 세상이 뒤로 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회의 변화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결국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나간다고 본다. 우리에게 주어진 절망적인 상황은 우리가 더 힘을 내야 할 이유일 수는 있어도 우리가 희망을 포기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힘내시라.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