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프로게이머로의 입문과 은퇴, 그리고 이후의 삶

[기획] 프로게이머로의 입문과 은퇴, 그리고 이후의 삶

[e스포츠의 미래를 말하다⑤] 10년 전 풀지 못했던 숙제, 지금은…

기사승인 2017-10-15 05:00:00

국내 e스포츠 선수들의 연봉이 프로야구 선수에 필적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이상혁(페이커)의 경우 국내 프로야구 최고 연봉자인 이대호(4년 150억 원)에 비견되는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스포츠는 각광받는 미래 스포츠 종목입니다. 북미와 유럽, 중국에서 연이어 거대한 투자자가 나타나고 있고 선수들은 일찌감치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국내 시장 규모나 인식은 여전히 초라합니다. 친(親) 게임정권이 출범해 기대를 받고 있지만, 당장의 인식과 시장규모는 마이너 내지는 지하세계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쿠키뉴스 스포츠팀은 e스포츠의 현 주소를 점검하고 유의미한 담론을 제시하고자 이번 연재물을 기획했습니다. e스포츠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프로게이머는 특수한 직업입니다. 약 70% 선수가 성인이 되기 전 데뷔할 만큼 젊은 업종이지만, 평균 수명이 5년 미만일 만큼 활동 시기가 짧기도 합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하고, 20대 중반부터 베테랑 취급을 받습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들기 전 극심한 기량 하락을 겪고, 30대까지 버티면 ‘기적’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지난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e스포츠 실태조사 및 경제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현역 선수들이 계획한 은퇴 시점 평균은 ‘3.89년 후’였다고 합니다. 미성년자 선수들도 ‘4.93년 후’로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인이라면 ‘취업준비생’ 코스를 밟기도 전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는 셈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스타크래프트 ‘최종병기’ 이영호가 은퇴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만 23세에 불과했죠.

▶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은퇴 이후의 삶

90년대 후반 스타크래프트 대유행과 함께 e스포츠가 태동했습니다. 시대 흐름에 맞춰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새로이 탄생했고, 전국에 숨어있던 수많은 재야 고수들이 그 이름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부산 광안리를 가득 채운 10만 명의 관중부터 수억 원대로 솟구친 연봉에 이르기까지. e스포츠 시장은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화려함 이면에는 반드시 어둠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장이 안정화되면서 여느 프로스포츠가 그러하듯 가장 뛰어난 극소수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빛을 보지 못한 대다수 선수는 소리소문없이 무대 밖으로 퇴장했습니다.

갖춰진 인프라가 미비한 시대였으니 그들의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설계 또한 제대로 이뤄졌을 리 없었습니다. 시장의 역사가 짧으니 ‘선구자’ 혹은 ‘롤모델’로 불릴 만한 이 또한 없었습니다. 수년 동안 외길만을 걸어왔던 선수들은 더 이상 자신의 장기를 살릴 방법을 찾지 못하자 방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역시절 화끈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던 ‘태풍저그’ 이영한은 성공적으로 제2의 인생을 개막한 전(前) 프로게이머 중 한 명입니다. 현재 그의 직업은 옵서버이면서 인터넷 방송인입니다. 지난 2015년 은퇴했지만,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가 그의 생계수단입니다.

그런 이영한 역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은퇴를 결심했던 당시까지 인생 2막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의 심정을 그는 “막막했다”고 표현했습니다.


Q. 이영한 선수는 왜 프로게이머가 됐나?

=스타크래프트가 처음 나왔을 때쯤 전국에 PC방이 많이 생겼었다. 9살 때 게임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PC방에 갔다가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했고, 그때 흥미를 많이 느꼈던 게 직업선택으로까지 이어졌다.

Q. 은퇴를 결정한 심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가 아닌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을 플레이했던 시기였다. 원래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를 꿈꿨었기에 스타크래프트2를 플레이할 때는 흥미를 많이 잃었다.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싶어 시작했던 프로게이머였기 때문에 (당시) 상실감을 많이 느꼈다.

Q. 현역 시절에도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고민했을 텐데.

=선수들끼리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일 것이다. 그때마다 코칭스태프들이 해주는 조언이 똑같았다.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당장 앞에 있는 게임에 집중해 성적을 잘 내야 한다는 거였다. 우리는 팬의 사랑을 받고 살기 때문에 성적을 잘 내면 잘 낼수록 나중에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는 의미였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미래를 구상한다고 해서 지금 생활이 나아진다거나, 안정감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프로게이머가 굉장히 특수하고 새로운 직업이었다. 때문에 내가 은퇴할 때쯤에 새로운 방향이 제시될 수도 있는 것이고, 코칭스태프나 감독 같은 기존 직업들도 생각할 수 있었다. 일단은 게임에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Q. 선수로 한창 활동할 때와 은퇴 결심 직후는 또 다를 것 같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선수로 활동할 땐 미래에 대한 생각을 거의 안 했다. 그런데 막상 은퇴를 생각하다 보니 정말 막막해지더라. 남들 공부하고, 학업에 열중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는 시간 동안 우린 연습에만 몰두했던 거다. 그만뒀을 때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상황에서 굉장히 막막했었다.

다른 일을 경험해보자 싶어 아르바이트를 반 년 정도 했었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고, 기업에서 도움을 받는 생활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편의점, PC방 야간 아르바이트, 식당 서빙, 주방 일, 피자 가게, 심지어 빵 공장에까지 들어가서 일을 했다. 그런 단순 노동이나 아르바이트를 한 뒤에 느낀 건 ‘게임이 정말 쉬운 거구나’였다.

Q. e스포츠 업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선수라는 평을 받는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막막한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현재 스타크래프트2 해설가로 활동 중인 박진영으로부터 옵서버를 구한다고 소식을 들었다. 적극적으로 나를 써달라고 부탁해 e스포츠판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 리그 오브 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등 여러 종목의 옵서버로 일했고, 다양한 e스포츠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ASL 무대를 보고 다시 한번 선수 복귀를 생각하게 됐다.

Q. 개인방송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전 프로게이머에게 개인방송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처음에는 개인방송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않았다.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개인방송으로 넘어왔던 시기가 아니었고, 일부 방송인들이 지나치게 자신을 버려가면서 어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철구’ 같은 경우에 논란이 많지 않았나. ‘개인방송을 하려면 저 정도로 망가지고, 저런 식으로 방송을 해야만 하나’ 생각했다. 그 생각을 바꾸게 된 건 이영호 선수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에게 ‘내 게임을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는 걸 알린 대표 케이스였다. 그걸 보면서 저 또한 개인 방송을 통해 제 게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역) 선수 시절엔 게임밖에 안 했다. 팬과의 소통은 적었다. 은퇴한 선수들에게 개인방송이란, 그 시절 (애정을) 쌓아온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다. 현역 시절 소통 과정이 경기 후 팬 미팅밖에 없었던 것과 달리 최근 개인방송에선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어 좋다.

Q. 선수면서 관계자다. ASL이나 GSL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스타크래프트2 선수들은 대부분이 후배고, 스타크래프트1 선수들은 동료나 선배가 많다. 처음 GSL(스타크래프트2 리그) 옵서버로 복귀했을 때는 ‘다시 e스포츠판으로 돌아와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후배들이 경기하는 걸 보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ASL(스타크래프트1 리그)을 연출할 때는 좀 달랐다. 선수들 플레이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속에 있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더라. 뛰쳐나가고 싶은 감정이 올라왔다. 시즌1·2를 연출로 마치고 나니까 이대로는 옵서버를 더 못 하겠더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시 선수로 복귀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잘 준비한 뒤 좋은 결과를 내 뿌듯하다.

Q. 현역 프로게이머들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해준다면.

=잘되는 선수들은 고민이 없다. 분위기가 올라오거나, 관심·사랑을 많이 받는 선수들은 게임에 집중하는 데 여념 없다. 반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아직 방송 경기에서 자기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선수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경기에 못 나오거나,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내가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미래를 지금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로 이어진다.

그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지금 하고 있는 이 게임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즐겁게 해야 보는 사람도 즐거워진다. 저 또한 저번 ASL 시즌에 부담감 없이 즐기는 상태로 경기에 임했기에 훨씬 게임이 잘 풀렸고, 보는 사람들도 즐겁게 봤던 것이다. 후배들에게 걱정하기보다는 즐기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

Q. 최근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제2 인생 설계를 돕고 있다.

=굉장히 현명한 처사다. 아무래도 프로게이머가 어린 나이에 비해 많은 돈을 벌지 않나. 생각보다 큰돈이 한 번에 확 들어오기 때문에 관리가 매우 어렵다. 부모님이 직접 자산 관리를 해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 홀로 돈 관리를 하는 친구는 돈 관리·개념이 어색하다. 자신이 얼마를 써야 하고, 어떨 때 써야 하고, 어떨 때 아껴야 하고 이런 부분을 판단하는 게 어렵다.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준다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선수들이 버는 돈이 적은 수치가 아니다. 굉장히 많은 돈이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금액을 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 시절 관리를 못 해 많이 탕진하거나, 잘못된 쪽으로 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에 반해 이런 부분을 잘 설계한다면 제2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도움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Q. 추가로 이번 주제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인터뷰 주제가 ‘프로게이머 이후의 삶’ 아닌가. 사실 저는 선수 시절 가정이 생긴 특수한 케이스였고, 은퇴 후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을 해봤다. 힘든 일들을 경험해본 뒤 다시 e스포츠 판으로 돌아오면서 느낀 건 기존에 누렸던 것들에 대한 행복과 감사함이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좋은 가르침과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이 선수 생활을 그만둘 때 이런 부분을 잘 모른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얼마나 행복한 직업인지. 방송, 게임처럼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직업은 흔치 않다.

주변 일반인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 그래서 행복한가?’를 물어보면 열에 여덟은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 그냥 어쩔 수 없이 한다’고 답하더라. 설령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감이 크다는 걸 느꼈다. 저는 이제 (프로게이머를) 그만두는 친구들이 비록 e스포츠판을 떠나더라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 모두가 이영한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이영한이 은퇴 후에도 계속 ‘e스포츠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도 밝혔듯 인맥의 힘이 작용했고, 운도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준비돼있었고, 단 한 번 찾아온 찬스를 확실하게 거머쥔 케이스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선수에게 그와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겠죠.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은퇴 후 개인방송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이영한 혹은 ‘택뱅리쌍’처럼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 건 아닙니다. 어떤 선수들은 평균 두 자릿수 시청자를 유지하기도 버거워하고, 또 빈곤한 수익 창출 수단 때문에 생활고를 겪기도 합니다.

코칭스태프로의 취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프로게임단은 통상적으로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3명 정도의 코칭스태프를 둡니다. 현역 프로게이머 수에 비하면 등용문이 터무니없이 좁은 셈입니다. 또 몇몇 선수들은 코칭스태프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기도 하지만, 언어장벽 또는 문화 차이 등을 극복하고 자리잡는 이는 극히 일부입니다.

선수들의 은퇴 후 진로 설정을 돕는 건 모든 프로스포츠의 숙원사업입니다. e스포츠 또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어엿한 스포츠로 대우받기 시작한 요즘이니만큼 프로게이머의 은퇴 후 진로 설계도 보다 철저하고 꼼꼼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 메이저 종목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우선 프로축구 케이리그는 2011년 승부 조작 사태 이후 선수들의 경제적 안정화를 돕기 위한 선수 연금 제도를 도입, 제2의 인생을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축구협회와 협력해 선수의 지도자 교육을 돕기도 한다고 합니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협회 주도하에 올해부터 은퇴 선수의 호주 세미 프로리그, 일본 독립리그 진출을 돕고 있습니다. 또 선수가 원할 경우 야구와 관계없는 기술직 연마 혹은 이민 등에 도움을 주기도 하죠.

사실 e스포츠도 대책 없이 지켜만 보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한국e스포츠협회가 해마다 프로게이머 소양교육을 실시합니다. 이 시간을 활용해 부정방지, 자산관리, 은퇴 후 진로 설계를 교육하고, 선수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끔 경각심을 심고 있습니다. 여기에 해설자, 게임단 감독 등으로 활동 중인 프로게이머 선배들이 연사로 나서기도 하죠.

하지만 e스포츠는 분명 기존 메이저 프로스포츠만큼 인정받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주류로부터 ‘그들만의 스포츠’로 인식돼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령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프로게이머들은 체육회가 실시하는 ‘은퇴선수 잡매칭’ 시스템의 ‘취업지원서비스’ ‘멘토링’ ‘맞춤형직업훈련’ 등의 지원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프로게이머가 대한체육회에 체육선수로 등록돼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10년 전 풀지 못했던 숙제, 지금도 해결해야 할 과제

서울 모처에서 맛집으로 인기를 끌면서 사업을 확장 중인 ‘문성골 족발’의 사장님은 올드 e스포츠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입니다. 지금은 해체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위메이드 폭스의 전 사령탑 김양중 전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죠.

사실 김 전 감독은 지난 2011년 팀 해체와 동시에 e스포츠 업계를 떠났습니다. 전혀 무관한 시장에서 뛰어들어 자리 잡은 케이스입니다. 김 전 감독은 왜 e스포츠판을 완전히 떠나 요식업계에 정착했는지를 묻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또 “e스포츠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전성기는 극히 짧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분야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통계를 내봐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e스포츠는 더욱 소수일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김 전 감독은 “돈이라도 많이 번 친구들은 그걸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 딱히 대안이 없으니 할 일도 없다. (불투명한 미래는) 당시에도 풀지 못했던 숙제였고, 지금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뼈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프로게이머는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과도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e스포츠 위상이 올라가는 만큼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2016년 교육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진로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프로게이머는 초등학생이 희망하는 직업 9위였습니다. 중학생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에서도 20위에 올랐습니다.

그런 만큼 선수 복지 향상 및 건설적인 은퇴 후 설계는 더욱 필연적 과제로 다가옵니다. 2015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e스포츠 실태조사 및 경제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현역 프로게이머들이 꼽은 ‘선수 활동을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 어려운 점 1순위’는 ‘불투명한 미래’였다고 합니다. 이어 2순위 역시 ‘군복무로 인한 경력단절 및 불가피한 은퇴’였습니다. 더욱 많은 선수들이, 보다 오랫동안 ‘e스포츠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입니다.

윤민섭 기자 yoonminseop@kukinews.com

영상 촬영·편집=김해성 영상기자·전덕수 PD

윤민섭 기자
yoonminseop@kukinews.com
윤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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