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표가 나란히 민생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격차 해소’를 앞세워 정년 연장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민생 현장을 찾고, 정책 논의 기구를 띄우며 민생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법리스크와 ‘차별화’를 위해, 민주당은 정부 실정을 부각하며 ‘사법리스크 물타기’를 위해 민생 정책 드라이브에 나섰다는 평가다. 여야가 모처럼 민생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엇갈린 속내로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년연장 쟁점과 과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정년 연장 제도개혁’을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도록 정년 연장 등을 제도개혁해야 한다”며 “도발적이고 위험한 주제지만 정치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공개하며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동훈 1호 특위’인 격차해소 특위 주최로 열렸다.
한 대표는 25일 민생경제 특별위원회를 띄워 직접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한 대표는 “제가 직접 키를 잡고 대한민국 민생 회복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샅샅이 살펴 즉각 실천하겠다”며 “민생 회복과 경제 성장을 함께 아우르는 정책을 개발하고 실천하겠다. 이를 통해 우리의 능력과 진심을 국민께 증명해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가 연일 민생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맞닿아있다. 민생을 챙기는 수권 여당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하고 야당과 차별화를 꾀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인한 반사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한 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이제 리스크가 아닌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는 민생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친한(친한동훈)계 장동혁 최고위원도 SBS 라디오에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더라도 국민의힘이 유능한 정책 정당으로 바뀌지 않으면 민심이 저희한테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이 대표도 민생 현장을 찾고 당 정책 논의 기구를 띄우는 등 민생 광폭 행보에 나섰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민생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정부 실정을 부각했다, 동시에 ‘대안’으로서의 민주당 정책을 내세웠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를 찾아 간담회를 열고 고교 무상교육 예산 증액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내년도 고교 무상교육에 대한 중앙정부 부담분이 일몰되는 데 대해 “국가 경영이 원칙을 잃어버린 상황”이라며 “초부자 감세를 통해 국가재정이 열악해지니 온갖 영역에서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데, 교육지원예산이 삭감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가 무상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고교 무상교육 예산에서 정부 지원을 3년 연장하는 내용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양곡관리법 등 ‘농업 민생 4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 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쌀값 20만원 지키겠다’는 건 윤석열 정부 공약이었는데 이제 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건가. 도대체 집단 망각증에 걸린 건지, 기억상실증에 걸린 건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민생을 책임지는 1차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민생은커녕 오로지 정쟁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민주당은 농업 민생 4법 또한 28일 본회의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 추진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이 대표는 재계와 투자자를 만나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주식 시장 침체 원인을 정부 정책 실패로 돌리는 동시에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중이다. 이러한 이 대표의 민생 행보는 ‘사법리스크’ 부담을 일부 덜어내면서 외연을 넓히고 대권가도를 다지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여야가 민생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동상이몽’으로 인해 실제 성과가 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은 물론, 28일 본회의에 올리겠다 공언한 고교무상교육 국비지원 일몰연장법, 농업 민생 4법 모두 정부·여당이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이 밀어붙여 본회의에서 통과가 되더라도,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크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민생 법안의 경우엔 야당 동의 없이는 본회의 통과부터 어렵다.
한편 여야 대표회담 성사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달 이 대표의 회담 제안을 한 대표가 수락한 뒤 현재까지 친척이 없는 상태다. 민주당이 다음 달 10일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 표결을 앞두고 한 대표를 향해 특검 수용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당장 회동 실무 협의가 재개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