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너무 가혹한 금융권 적폐청산 끝은

[기자수첩] 너무 가혹한 금융권 적폐청산 끝은

기사승인 2017-12-15 05:00:00

“개국 공신들에게 모두 자리를 마련해 주려면 50개 이상 자리가 필요하다. 정책 코드가 맞는 인사가 금융권 수장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물러나면 좋겠지만 아니면 차선책을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당 관계자가 한 말이다. 당시 흘려들었지만 이것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이용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비워진 자리는 새로운 낙하산이 차지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에 대한 적폐청산 바람은 지난 10월부터 감지됐다.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을 비롯해 우리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채용비리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11월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 검찰은 국민은행, 우리은행, DGB금융그룹 등을 수사하면서 압박했다. 결국 지난달 3일 이광구 행장이 채용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 자리에는 한일은행 출신 손태승 부행장이 내정됐다. 하지만 내정 발표를 앞두고 검찰은 우리은행 인사담당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우리은행에 대한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최병길 전 부행장을 밀었던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와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날을 세우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감원장은 ‘셀프연임은 바람직 하지 않다’, “CEO승계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와 같은 거친 발언을 공식적인 석상에서 연일 내놓고 있다. 특정인물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금융권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등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금융노조가 주장하고 있는 셀프연임 비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같은 금융권 적폐 청산 바람을 두고 최근 금융권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모습은 2008년 MB정권이 대재적인 인사를 했던 것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이러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항상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은 경제활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정부 정책방향에 맞는 인물이 보다 선호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 민간 금융사의 인사문제를 흔드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해당 금융사 CEO가 경영 악화, 배임 등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 이사회를 통해서 자체적으로 해임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동안 금융권에는 이같은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CEO들이 자신의 장기 연임을 위해 경쟁자를 쳐내거나 회장 연임 절차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변경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볼멘소리에 앞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몇 년 후면 정권이 또 바뀔 수도 있다. 또 다른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 금융권을 흔든다면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정권의 색깔을 떠나서 ‘국가 경제의 윤활유’라는 금융 본연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우선 금융권이 스스로 투명한 인사 원칙과 공정한 경쟁을 통한 CEO 선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또한 금융권을 흔드는 일을 중단하고 공정한 금융사 지배구조가 안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 지원하는 아량을 베풀 때다.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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