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5)씨는 2013년 다 큰 어른이 돼서야 자신의 고국인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밟았다.
1980년 그가 8살 때 노르웨이로 입양된 지 꼭 33년 만이었다.
한국말도 전혀 못하는 그가 친구도 없고 문화도 낯선 이 나라를 혈혈단신 다시 찾은 건 오로지 친부모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현실은 기대만큼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A씨는 입양 당시 한국이름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워낙 오래돼서 A씨를 입양 보낸 기관에서도 관련 자료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가 한국 땅에서도 왜 김해를 선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입양 전 그의 마지막 행적과 관련이 있지 않겠냐는 추측만이 있을 뿐.
A씨의 간절한 바람에도 친부모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국말도 잘 못해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었던 A씨는 노르웨이에서 매달 지원해주는 연금으로 생활해오고 있었다.
이런 A씨에게 유일한 위로는 술이었다.
입국 후 그는 8㎡ 남짓한 고시텔의 한 원룸에서 지냈다. 생전에 그를 본 동네주민들은 ‘그의 손에는 항상 소주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민들은 “부모를 찾지 못하는 애타는 심정을 매일 술로 채웠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A씨 몸도 점점 망가졌다.
A씨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세가 계속 악화되면서 생전에 부모님을 꼭 뵙고 싶다던 A씨는 그 소원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지난 21일 오전 11시께 A씨가 지내던 김해 한 고시텔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며칠이 지나도 A씨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A씨 시신 주변에는 술병들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간경화와 당뇨 합병증으로 A씨가 숨진 것으로 파악했다.
현재 그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의 마지막이 더 쓸쓸할 것으로 보인다.
A씨가 외국인 신분인데다 노르웨이 양부는 이미 사망했고, 양모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여서 시신을 인수할지 여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노르웨이 가족에게 시신이 인계되지 않으면 김해시에 무연고자 변사 행정처리를 통보할 예정”이라며 “친부모를 찾기 위해 고국에 왔지만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해=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