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 투자사기단 ‘행복팀’…수사부터 1심 선고까지

농아인 투자사기단 ‘행복팀’…수사부터 1심 선고까지

기사승인 2018-01-25 14:16:34

201611월 중순께 서울에 사는 농아인(청각장애인) A씨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집에서 수백㎞나 떨어진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를 찾아왔다.

집 근처도 아닌 데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경찰서를 A씨는 왜 찾아왔을까?

 

농아인 투자사기단 행복팀꼬리 밟히다

 

사실 A씨가 이날 경찰서를 찾아오면서 수백명의 농아인도 모자라 그 가족까지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농아인 투자사기단 이른바 행복팀사기행각이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다.

A씨는 농아인 복지사업에 쓰이며 투자하면 고수익은 물론 좋은 직장에 차와 집도 준다는 행복팀의 감언이설에 속았다.

주변의 다른 농아인들은 전 재산도 모자라 잘 알지 못하는 제2금융권 대출까지 받아가며 행복팀에 투자했다.

하지만 약속했던 수익은커녕 원금마저 돌려받기 힘든 상황이 되자 A씨는 의심이 들었다.

이 문제로 끙끙 앓고 있던 A씨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속내를 털어놨지만 모두 쉽지 않을 것이란 대답뿐이었다.

A씨는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유사 사건을 해결한 경험이 있는 창원중부경찰서 수사과장을 보고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찾았다.

그런데 마음이 급했던지라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수화통역사 없이 이를 설명하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도 포기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음을 직감한 수사과장은 글을 써서 묻고 대답하는 필담A씨와 4시간 넘도록 주고받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경찰은 서둘러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수사에 뒤늦게 밝혀진 행복팀 실체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뒤늦게 행복팀 실체가 드러났다. 행복팀은 같은 농아인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이 목적인 범죄조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찰은 전국의 농아인 500여 명이 280억원대 피해를 당한 것으로 파악했다.

동시에 쇠고랑을 차는 행복팀 조직원들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총책은 베일에 싸였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총책의 전 연인이었던 행복팀 중간책이 총책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고 경찰에 범행을 낱낱이 폭로해 버렸다.

이로써 모든 퍼즐이 완성되면서 행복팀 수수께끼가 풀렸다.

하지만 사건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비록 총책 등 행복팀 핵심 간부들은 구속됐지만,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받던 행복팀 잔당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피해자들을 회유하고 다녔다.

회유가 통하지 않으면 협박도 일삼았다. 이 때문에 경찰이 행복팀 피해 신고 센터를 운영했지만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피해자들의 고통은 점점 커졌다.

계속 불어나는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풍비박산 나는 가정이 늘어났고, 이를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법원, 행복팀 총책 등에게 중형 선고 엄벌

 

결국 행복팀 총책 등 30여 명의 행복팀 조직원 모두가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하지만 총책은 재판 내내 행복팀은 전혀 모른다. 관여한 적도 없다며 무죄를 항변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결심공판에서 총책 김모(45)씨에게 징역 76월을 구형했다.

원래 구형량은 징역 15년인데 김씨도 형법상 감경 대상인 농아인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이었다.

행복팀 피해자와 그 가족들로 구성된 대책위원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행복팀 피해자들이 여전히 고통 받는 것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농아인 감경 대상 형법 조항 삭제청원 운동과 행복팀 엄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계속했다.

지난해 10월 말 예정된 총책 김씨의 선고가 연기됐다. 이 사이 행복팀 피고인들의 공소장 일부가 변경됐다.

검찰이 사기 혐의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한 것이다.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면 검찰 구형량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

농아인이라 실형을 받더라도 오래 복역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를 건 행복팀 조직원들에게는 최악의 변수가 생긴 것이다.

창원지법은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받아들였다. 2개의 단독재판부에서 따로 진행하던 행복팀 사건도 합의재판부에서 같이 맡게 됐다.

결심공판에서 검찰 구형량은 예상대로 큰 폭으로 늘었다.

공판검사는 피해자들은 이로 인한 경제적 고통뿐만 아니라 농아인들 역시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삶의 희망마저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통상의 사기 사건과는 다른 유형으로, 피고인의 사기 행각은 가히 살인 행위와 맞먹는 것이라고 울먹거리며 총책 김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그럼에도 총책과 총책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계속 무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총책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창원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장용범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김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행복팀은 단순히 돈만 빼앗은 게 아니라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피해자들에게 허황된 환상을 심어주고,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며 행복을 빼앗아 갔다고 엄히 꾸짖었다.

특히 이 사건은 유사수신 사기 범죄에서 범죄단체조직죄가 인정된 첫 판례여서 그 의미가 크다.

재판부는 행복팀은 사기행각을 위해 총책, 총괄대표, 지역대표, 팀장 등으로 역할을 나눠 결성한 범죄단체조직으로 판단했다.

농아인 사회에 전대미문으로 기록될 행복팀 사기 사건은 1심 법원이 핵심 간부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번 선고 역시 농아인 감경 조항이 적용된 것이어서 이를 계기로 농아인 감경 조항존폐 논란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행복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 여부도 아직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창원=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

강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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