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송된 tvN ‘비밀의 숲’ 마지막회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의 등장이었다. 세상에 완전히 몸을 드러낸 순간을 내 눈으로 목격했다는 신선한 충격이 온 몸을 휘감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드라마가 나타난 것인지, 신인 작가의 데뷔작에서 어떻게 이 정도 완성도가 가능한 것인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드라마를 쓴 것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생각을 멈추자 감정이 움직였다. ‘비밀의 숲’은 달라도 뭔가 다른 드라마라는 확신이 만든 순수한 호감이었다.
‘비밀의 숲’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느낀 건 나뿐이 아니었다. 첫 방송부터 종영 이후 몇 달이 지날 때까지 ‘비밀의 숲’을 두고 다양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 중 “재미있다”거나 “연기를 잘한다”는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대신 짧은 감탄사,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칭찬, 혹은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솔직한 감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비밀의 숲’이 수많은 시청자들의 몸 안에 잠시 들어가 혼란스럽게 한 결과다.
그럼에도 냉정하게 작품을 평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누군가는 명대사를 쏟아내는 이수연 작가의 필력을 이유로 들었고, 누군가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없었으면 드라마가 완성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드라마에서 반복되어온 스릴러 장르와 검사 소재의 관습을 깬 것에 주목하기도 했고, 이수연 작가의 글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한 연출력에 높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모두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다양한 말들이 나열됐을 뿐 드라마의 의미와 무게감, 여운 같은 그 무언가를 속 시원히 관통하는 표현을 찾기 힘들었다. ‘비밀의 숲’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더욱더 닿지 못했다. 대신 중간부터 보기 힘든 드라마, 집중해서 봐야 하는 드라마, 호불호가 갈리는 드라마라는 평가가 ‘비밀의 숲’으로 가는 진입 장벽을 높였다.
이수연 작가는 1년 만에 JTBC ‘라이프’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함께한 배우 조승우, 유재명, 이규형이 연이어 출연하고 이동욱, 원진아가 합류했다. 배경은 검찰에서 병원으로 바뀌었다.
‘라이프’는 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드라마다. 전작보다 더 날카로워졌고 더 과감해졌다. 그곳엔 이미 완성된 세계가 있었다. 눈치 보거나 흔들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그 길이 맞다는 확신도 느껴졌다. ‘비밀의 숲’에서 느낀 흥분과 전율은 ‘라이프’를 통해 존경과 경이로 바뀌고 있다.
‘라이프’는 이수연 작가 작품의 높은 완성도와 독특한 색깔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비밀의 숲’과 ‘라이프’는 뚜렷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강한 확신을 갖고 거침없이 전진하는 드라마다. 그 목표가 어디에서 정해진 것이고 확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작가 본인만 알 것이다. 작가의 확신에 믿음을 갖게 하는 건 정해진 목표를 향해 가장 효율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나아가는 전개 방식이다.
한국드라마는 매주 두 시간이 넘는 분량을 어떤 이야기로 채우고, 어떻게 이어 붙이고, 어떻게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고, 어떻게 마무리 짓는지가 관건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공식이 있다. 분량을 채우기 위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꼬거나 주변인들의 사연을 집어넣기도 하고, 매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에피소드 방식으로 전체 서사를 조금씩 전개하는 방법도 있다.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선 복합장르를 이용하거나 자극적인 사건이나 소재를 집어넣는 방법이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은 반드시 해피엔딩이거나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닫힌 결말이어야 한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 제작 시간 부족은 ‘사전 제작’이 해결해준다. 공식을 지키면 무난하고 안정적인 평가가 뒤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망작’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기 쉽다. ‘호불호가 갈린다’거나 ‘마니아 층에게 사랑받았다’는 평가는 그나마 다행이다.
16회 미니시리즈를 2시간 분량의 영화처럼 높은 밀도로 꽉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공식이다. 이수연 작가의 강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비밀의 숲’과 ‘라이프’는 16회 분량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완벽한 구성으로 짜여있다. 하나의 사건, 작은 실마리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이야기로 번지는 과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이수연 작가는 매 작품 복잡하지만 설득력 있는 미로를 만든다. 우리가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정교한 미로다. 출발점에 놓인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입장에 이입해 때로는 미로를 돌파하고 때로는 돌아가며 결말로 향하는 과정을 즐기게 된다.
‘비밀의 숲’은 잘못된 시스템을 내부에서 바꾸는 이야기였다. ‘라이프’는 외부의 개입에 의해 문제 있는 시스템이 바뀌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출발점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킨다는 메인 테마는 같다.
어쩌면 이수연 작가도 ‘비밀의 숲’과 ‘라이프’을 통해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드라마의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왜 한국드라마는 매번 똑같은지, 왜 웰메이드 한국드라마는 나오지 않는지, 한국드라마는 언제까지 외국 드라마를 베끼거나 리메이크할 건지. 아무도 답하지 못한 질문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어렵고 불친절하다는 비판에 변명하는 것보다, 일단 ‘라이프’를 보길 권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