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가 장기 생존한 경우 살아있는 기간에 따라 치료비, 간병비(개호비) 등을 추가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민사부(서봉조 판사)는 20년 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됐지만, 당시 산정한 기대여명((특정 시점에서 앞으로 더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을 넘어 현재까지 생존해있는 환자 A씨의 가족이 보험사 B를 상대로 낸 3번째 추가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을 원고 승고로 최근 판결했다.
환자 A씨(당시 27세)는 앞서 1998년 운전 중 교통사고로 심한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 및 의식불명의 사지마비 상태가 됐다. 당시 법원은 환자의 여명이 사고 날로부터 약 6년 2개월 정도로 예측된다는 감정결과를 기초로 손해배상액을 확정했다. 그런데 7년이 지난 2006년에도 A씨가 생존해있자 가족은 두 번째 소송을 제기해 환자의 기대여명을 8년 3개월 연장해 배상을 받았다. 이후 해당기간이 지나고도 A씨가 건강하게 살아있자 가족은 2016년 다시 세 번째 소송을 내 이번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A씨가 45세가 되는 2027년 9월까지로 기대여명을 늘려 A씨 가족에 치료비, 개호비(간병비), 생계비 일부를 추가 보상하라고 보험사B에 선고했다. 두 번째 소송에 이어 기대여명을 약 14년가량 늘린 것이다. 재판부는 “실제 원고가 종전 소송의 여명종료일을 경과한 이후에도 생존함으로써 새로운 손해가 발생했다”며 “이 사건의 소는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않고 제기되었으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과거 기대수명이 얼마 못 살 것으로 예상됐던 마비 환자나 장애인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른 기대여명의 산정기준 및 배상기간에 대한 보완 필요성도 제기된다. 개별적인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A씨와 같이 뇌손상을 입어 지속적 식물상태에 있는 환자의 경우 기대여명을 일반인의 평균여명의 10~20% 비율로 조정한다. 그런데 최근 생활환경 및 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기대여명보다 장기 생존하는 환자들이 증가하면서 감정결과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상수 법무법인 서로 변호사는 “장애환자들의 여명을 감정하는 기준이 약 20년 전에 맞춰져있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발전된 의료기술과 나아진 생활환경을 반영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보다 생존기간이 늘었지만 배상기한은 종료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 가족들이 적지 않다”며 “앞으로 중한 환자들의 경우 손해배상 기한이 이미 끝났다고 고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피력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같은 수준의 장애여도 10년 전보다 현재의 의료수준이나 회복 결과가 천양지차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기대여명의 기준과 현실 간에는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환자들의 수명이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부담에 대한 준비도 필요한 상황이다.
최윤희 순천향대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환자들이 오래 사는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감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료계도 공감하고 있다. 다만, 마비 등 특정 환자들의 여명을 추적한 연구의 수가 많지 않고, 감정 자체에도 개별 환자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적인 연구의 활성화가 우선 이뤄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현장에서 보면, 환자의 간병을 놓고 가족들이 갈등을 보이는 등 수명 증가가 가족과 사회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며 “과거보다 재활치료의 종류가 다양화되었고 환자들의 생존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어디까지 표준 치료로 인정할 것인지 심도 있는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