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하늘이 노랗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암이라고 하니 까마득하더군요."
전이성 전립선암으로 반 년 가량 투병 중인 정충현(65)씨는 암 진단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평소 소변 문제가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러려니'하고 넘긴 것이 원인이었다. 정씨는 "소변이 30분, 15분마다 한 번씩 마려웠다. 그러다 화장실에 가면 한참 동안 안 나오는 느낌이 들고, 밤에는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고생했다"며 "불편했어도 약 먹고 2~3년 정도 그럭저럭 버텼다. 진작 병원에 갔어야 하는 건 알았지만 암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전립선암은 남성에게 폐암 다음으로 많이 생기는 암이다.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전립선암이 1위 남성암으로 꼽힌다. 전립선암의 80%는 조기에 진단되고, 이 경우 95% 이상의 완치율을 보여 착한암으로 불린다. 그러나 암세포가 뼈, 임파선, 간, 폐 등으로 퍼진 전이성 전립선암(4기 전립선암)은 생명까지 위협하는 무서운 암이다. 치료전략도 수술이 아닌 호르몬치료, 항암치료로 생존기간 연장을 목표로 한다.
정씨도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성 전립선암을 진단받았다. 진단 때는 이미 엉치뼈 쪽으로 암이 전이된 이후였다. 전립선특이항원(PSA) 수치도 260ng/ml로 정상수치(0~4ng/ml)를 훨씬 웃돌았다. 정씨는 "소변 문제 외에는 특별히 건강상 이상을 느낀 점은 별로 없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고 말했다.
대한비뇨기과학회는 50대 이상 남성은 조기발견을 위해 1년에 한 번씩은 전립선특이항원(PCA) 검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씨와 같이 조기진단 시기를 놓쳐 전이성 암으로 발전한 뒤에 병원을 찾는 환자는 적지 않은 실정이다. 국내에서 매년 약 1만4000명의 전립선암 환자가 새롭게 진단되는데, 이 중 전이성 전립선암 환자들이 약 15~20%를 차지한다.
이처럼 조기진단이 어려운 이유는 50~60대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전립선비대증과 전립선암의 증상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의료현장에서는 전립선암 환자들의 대부분이 전립선비대증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갑작스럽게 전립선암으로 진단되는 경우라고 말한다. 정씨의 주치의인 정재영 국립암센터 비뇨의학과 교수는 "야간에 소변을 누기 위해서 2-3번 이상 깬다면 전립선 질환을 의심하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전통적인 믿음 때문에 불편함 정도가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참다가 결국 늦은 진단을 받는 환자가 많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전이성 전립선암에서는 배뇨장애 뿐만 아니라 암 전이로 인한 골반통, 요통 등의 통증도 함께 발생한다. 정 교수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골반통, 요통 등 골동통이 있어서 정형외과, 신경외과, 통증 클리닉 등 증상 치료를 하기위해 갔다가 뼈전이를 통해 역으로 전립선암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며 "-다발성으로 뼈에 전이가 되어있는 상황에서의 골동통을 제일 많이 호소한다. 드물게 척추로 전이된 환자의 경우 척수신경을 압박해 마비증세가 갑자기 발생하여, 침상에서 내려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전이성 전립선암은 불치병으로 여겨졌다. 다행히 최근 치료 환경은 확연히 좋아졌다. 새로운 신약과 치료법의 도입으로 전이성 전립선암 중에서도 심한 것으로 평가되는 남성호르몬차단요법(ADT)에 듣지 않는 환자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삶의 질을 보다 길게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 교수는 "전이성 전립선암의 표준 치료법으로 남성호르몬 차단요법이 시행된다. 문제는 남성호르몬 차단에 반응하지 않는 15~20%의 환자들이 존재하고, 또 나머지 80%의 환자들도 약 1년 6개월 정도 이후에는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었다"며 "그런데 초반부터 아비라테론을 투여하는 새로운 병용요법이 나와 통증 호소 없이 삶의 질을 유지하는 기간을 평균 약 47개월로 늘렸다. 이는 4기 암환자들이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가장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짐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씨는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병원을 방문해 항암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전이성 전립선암은 완치가 어렵고, 꾸준한 치료가 요구되는 만만치 않은 병이다. 그러나 투병 중 일상생활을 누리는 삶의 질을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치료 4개월차에 접어든 정씨는 현재 자영업자로 돌아가 생계활동을 하면서, 운동 등을 병행하고 있다.
정씨는 "지금은 증상이 아주 좋아졌다. 예전에는 15~30분 마다 화장실을 갔는데 요즘에는 하루 서너번 정도로 줄었다. 피검사(PSA) 수치도 정상으로 떨어졌다"며 "요즘 산에 다니는데 정상까지 등반하는데도 문제 없다. 힘든 일은 줄이고, 마음 편히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전에는 매일 소주 세 병을 마실 정도로 술도 많이 먹었는데 싹 끊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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