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이 봄에 어린 나물들이 불쌍하다...추워 떠는 것 같다

[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이 봄에 어린 나물들이 불쌍하다...추워 떠는 것 같다

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제2대학 학장)

기사승인 2021-05-08 12:30:39
박한표 학장
사람은 참 다양하다. 특히 어떤 가치를 두고 함께 일을 하면서, 반응하는 태도가 정말 다양하다. 나 같지 않다. 나는 일단 긍정의 힘을 믿고, 행동한다. 그런데 말은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태도, 행동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태도, 생각이 없어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가 위험한 무능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무능은 개인의 무능으로 끊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타인의 삶까지 침몰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속상한 마음에 일찍 일어나 잡은 책이 고 채현국 선생의 대담집인 <쓴맛이 사는 맛: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다. 고인이 이사장으로 계시던 개운중학교 정문 오른쪽에 ‘지성(至誠)’이라 새긴 돌 비문이 있다고 한다. 바로 영화 <역린>으로 유명해진 <중용> 23장이 소환되었다. 

基次致曲,曲能有誠(기차치곡 곡능유성)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有天下至誠能化(유천하지성능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내면적으로 형성되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답은 '지성(至誠)'이다. 내가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다. 영화 <역린> 장면이 생생하다. 여기에 나오는 정조의 삶이 내가 지향하는 것이다. 정조의 삶은 배움, 곧 읽기와 쓰기였다는 것이다. 흔히 권력은 소유와 지배, 나아가 쾌락의 증식일 뿐, 거기에서 자유와 충만함을 누리기란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둘을 가늠하면서 헷갈려한다. 물론 선택은 언제나 소유와 쾌락 쪽으로 기울고, 그러면서 삶이 힘들고 공허하다고 한탄한다. 헷갈린다기보다 진실을 알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한지 모른다. 고미숙이 인용하고 있는 안대희가 쓴 <정조치세어록>의 내용을 인용한다. 


"하늘 아래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 첫째로 경전을 연구하고 옛날의 진리를 배워서 성인들이 펼쳐 놓은 깊고도 미묘한 비밀을 들여다본다. 둘째로 널리 인용하고 밝게 분별하여 천 년의 긴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시원스레 해결한다. 셋째로 호방하고 힘찬 문장 솜씨로 지혜롭고 빼어난 글을 써내어 작가들의 동산에 거닐고 조화의 오묘한 비밀을 캐낸다. (…) 이것이야말로 우주 사이의 세 가지 통쾌한 일이다." 

나도, 정조처럼, 와인을 팔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하니, 인문운동가로 다음과 세 가지를 삶의 즐거움을 삼는다.

(1) 경전 및 고전뿐 아니라 시대적으로 필요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우주와 그 사이에 있는 인간들의 비밀을 들여다보며 즐거워 한다.
(2) 그러면서 문제의 대안을 찾아 해결하는 활동을 작은 범위에서부터 게을리하지 않는다.
(3) 그 내용들을 글로 쓰며,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 

짧게 말해, 정조처럼, 배우고, 읽고, 사유하며, 쓰는 일을 하고 싶다. 산다는 건, 천문과 지리 그리고 인문의 삼중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삼중주의 리듬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세 질문도 궁극적으로 이 배치 안에 있다. 그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인간이 전지, 하늘과 땅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우리는 더이상 하늘의 별을 보지 않고, 땅을 보는 안목도 잃었다. 땅이 투자대상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인간이 천지보다 더 높은 존재로 올라섰다. 그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공격을 당하며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중이다. 이제 앎은 자연지의 광대한 지평에서 벗어나 오직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 문명지로 축소되었다. 천지인을 아우르던 그 통찰력은 한낱 신화가 되어 버렸다. 그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 신록의 계절이 비와 구름으로 시작되고, 게다가 춥다. 어린 나물들이 불쌍하다. 다들 추워 떠는 것 같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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