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100’ 원본 보니…조작 없었다, 하지만

‘피지컬: 100’ 원본 보니…조작 없었다, 하지만

기사승인 2023-03-09 14:07:23
장호기 MBC PD. 넷플릭스

조작은 없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공정한 경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승전 승부 조작 의혹으로 도마 위에 오른 넷플릭스 ‘피지컬: 100’ 얘기다. 경기 중단을 야기해 최종 승부에도 영향을 줬을 수 있는 기계 굉음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다가, 이런 사정을 시청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다.

내용은 이렇다. 경륜 선수 정해민과 크로스핏 선수 우진용은 ‘피지컬: 100’ 결승전에서 ‘무한 로프 당기기’로 승부를 겨뤘다. 도르래에 감긴 밧줄을 가장 먼저 푸는 참가자가 우승하는 게임이었다. 이번 의혹은 녹화 당시 경기가 두 차례 중단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불거졌다. 일요신문은 지난달 24일 ‘정해민이 앞선 상황에서 우진용이 손을 들고 문제를 제기해 경기가 일시 중단됐고, 재개 후에는 제작진이 오디오 문제가 있다며 경기를 다시 중단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제작진은 9일 서울 상암동 MBC에 기자들을 불러 결승전 중단 당시 촬영분 원본을 공개하는 초강수를 뒀다. 제작진의 설명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 일요신문 주장대로 우진용이 경기 중단을 요청했나.

“아니다. 경기 과정에서 두 선수 기계에서 굉음이 이어졌다. 시뮬레이션 땐 발생하지 않았던 소음이다. 방송으로 쓸 수 없는 수준으로 큰 소음이었던 데다, 기계에 결함이 있을 시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제작진이 경기를 중단했다. 따라서 우진용이 손을 들고 경기를 중단시켰다는 주장, 특별한 이유 없이 승부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경기를 멈췄다는 주장 모두 사실이 아니다.”(장호기 PD, 이하 장 PD)

실제 원본 영상을 보니, 경기 시작 직후부터 기계에서 ‘끼익’하는 굉음이 여러 차례 단발적으로 발생했다. 소음은 우진용이 밧줄을 잡아당길 때 주로 발생했으나, 경기 발생 8분여 후부터는 정해민 쪽 기계에서도 굉음이 나기 시작했다. 경기를 중단한 것도 우진용이 아닌 제작진이었다.

Q. 정해민이 밧줄을 거의 다 푼 상황에서 제작진이 경기 중단을 요구했나.

“아니다. 출연자가 풀어야 할 밧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실제 당시는 경기가 중반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첫 중단 이후 매뉴얼에 따라 녹 제거 윤활제를 바르는 등 조처하자 더는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경기 재개 26초 만에 우진용 쪽 기계 도르래에서 줄이 꼬이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우진용 쪽 줄타래가 완전히 멈췄다. 이를 모니터링하던 제작진은 경기력과 무관한 돌발사고로 판단해 경기 중단을 요청했다.”(장 PD)

이 또한 원본 영상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도르래 내부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우진용 쪽 기계 도르래에서 줄이 엉키고 매듭이 지어져서 어느 순간부터 움직이지 않았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 마지막회 예고편. 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Q. 제작진 5명이 정해민을 둘러싸고 당일 경기를 재개하도록 압박했나.

“아니다. PD와 CP, 넷플릭스 측 관계자 등 3명이 출연진과 경기 재개 방식을 논의했다. 녹화 중 발생한 돌발 상황도 상세히 설명하고 사과하며 두 출연자가 합의한 재개 방식을 따르겠다고 말씀드렸다. 제작진은 며칠간 휴식을 취하며 두 선수가 체력과 정신력을 완전히 회복한 후 다시 경기하는 방안도 제안했으나, 두 선수가 ‘격차를 반영한 당일 재개’에 합의했다. 이런 협의 과정은 모두 녹음됐다. 당시 격차를 측정해 정해민 선수 쪽 밧줄을 약 45m 자른 채로 경기를 재개했다. 선수들에게도 ‘줄 삭제 등을 확인해보시라’고 했으나 괜찮다고 했다.”(장 PD)

Q. 원본 영상을 보면 경기 시작 후 10분 가까이 소음이 이어졌다. 왜 진작 경기를 멈추지 않았나.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했을 당시엔 발생하지 않았던 소음이라 제작진도 당황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게임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우선시했다. 오디오를 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경기를 지속하려고 했으나, 소음이 너무 컸고 안전사고 우려도 컸다. 소음 발생 후 10여 분간 제작진이 회의하며 대책을 마련했다.”(장 PD)

Q. 경기 초반 우진용 기계에서 주로 소음이 벌어졌는데.

“두 선수 모두 소음 문제가 있었다. 어느 한 선수에게만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줄이 꼬이는 상항까지 벌어졌을 땐 큰 정비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충분히 기계를 정비하고 선수들도 휴식하도록 며칠 뒤 경기를 재개하는 방안도 말씀드렸다. 두 선수가 당일 재개에 합의하셔서 어느 정도 (정비가) 미흡한 상태로 재개했다.”(장 PD)

Q. 시청자는 경기 중단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조작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막으로라도 당시 사정을 알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

“녹화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준비하지 못한 제작진의 책임이자 잘못이다. 어떤 변명도 드릴 수 없다. 방송사고가 난 사실을 투명하게 말씀드렸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지만, 당시엔 오디오 문제로 촬영분을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장 PD)

Q. 정해민에게 당일에 경기를 재개해야 한다고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지는 않았나.

“제작진과 ‘피지컬: 100’ 관계자는 며칠 후 재경기를 제안했다. 그런데 정해민 선수 쪽에서 오히려 당일 재개를 원하셨다. 우진용 선수와도 합의해서 선수들 합의 내용을 우선시했다.”(김현기 CP)
“제작진에서 특정 방안을 강력하게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장 PD)

정해민(왼쪽), 우진용. 넷플릭스

Q. 소음은 왜 발생했나.

“마찰이 심해져서 발생한 소음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으나 전문적인 의견은 아니다.”(장 PD)

Q. 정해민과 연락은 나눴나.

“다른 출연자를 통해 만나려고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두 차례 문자 메시지도 보냈으나 답이 오지 않았고, 이후 ‘제작진이 정해민에게 수차례 연락해 회유하려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돌아서 조심스러웠다. 다만 이번 제작진 설명이 정해민 선수의 인터뷰를 반박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 출연자는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절대 선수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라도 직접 만나서 원본을 보여드리고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기를 바란다.”(장 PD)

Q. 원본 영상을 대중에 공개하거나 돌발 상황을 반영해 감독판을 제작할 계획은 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특성상 촬영 원본은 넷플릭스 소유다. 저작권과 관련해서도 엄격한 규제가 적용된다. 또, 원본 재편집 이후 유포에 따른 문제, 출연자 간 사적 대화 유출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우려돼 기자들에게만 공개하기로 했다. 감독판 제작도 논의하지 않고 있다. 선수들을 만나 대화하고 오해를 푸는 게 먼저다.”(장 PD)

Q. 준결승 게임 중 우로보로스의 꼬리(출연자가 원형 트랙에서 뛰면서 다른 선수를 터치해 탈락시키는 게임) 시작 직전 제작진이 출연자에게 위치 변경을 요구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제작진은 최초 안내한 방식에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달리도록 게임을 진행했다. 출발 전에 출연자들에게 180도 돌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았고, 출연자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해당 의혹을 제기한 유튜버에는 강력히 대응하겠다.”(장 PD)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매끄럽지 못한 녹화 진행으로 불편함을 드려 두 출연자와 다른 참가자들, 시청자들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번 논란과 갈등의 원인은 출연자가 아닌 녹화를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제작진에 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장 PD)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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