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만이 답” “위안부 역사 지우기”...‘기억의 터’ 임옥상 작품 놓고 대치

“철거만이 답” “위안부 역사 지우기”...‘기억의 터’ 임옥상 작품 놓고 대치

서울시 “성추행 작가 작품 존치는 시민 정서 반하는 행동”
정의연 “해결책 없이 임옥상 핑계로 여성폭력 정치적 이용하려”

기사승인 2023-09-04 11:25:09
정의기억연대와 여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 일본군 위안부 추모 공간 ‘기억의 터’에서 관계자들이 서울시의 임옥상 작가 조형물 철거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시가 중구 남산 위안부 추모 공간 ‘기억의 터’에 설치된 임옥상 작가의 조형물을 계획대로 철거한다. 최근 재판(1심)에서 성추행 유죄 판결을 받은 임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시민 정서에 반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위안부 피해자 단체인 정의기억연대는 서울시가 일본군의 성폭력 역사를 지우려 한다며 철거에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4일 대변인을 통해 “서울 남산에 조성된 ‘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기억하기 위한 추모의 공간이다. 이런 곳에 성추행 선고를 받은 임옥상씨의 작품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생존해 계신 위안부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정서에 반하는 행동”이라며 이날 조형물 철거입장을 고수했다.

서울시는 임 작가가 지난달 강제추행 혐의 재판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자, 기억의 터에 설치된 임 작가 작품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기억의 터 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서울시의 방침이 소유권, 공법상 약정에 따른 권리를 침해하는 위법 행위라며 지난달 31일 철거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다음날인 지난 1일 추진위의 가처분신청을 각하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추진위는 편향적인 여론몰이를 중단하고 서울시가 하루빨리 임씨의 작품을 철거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한다”면서 “그 어떤 장소보다 고결하고 진정성을 담아야 할 ‘기억이 터’에 도덕성이 결여된 작가의 작품을 존치한다는 것은 위안부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아픈 과거 상처를 다시금 헤집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시민 대상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5%가 임씨의 작품을 ‘철거’해야 한다고 답했고, 위원회가 주장하고 있는 ‘조형물에 표기된 작가 이름만 삭제하자’는 의견은 23.8%에 불과했다. 작가 이름만 가리는 것은 오히려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이런 행동 자체가 ‘기억의 터’ 조성 의미를 퇴색시킬 뿐 아니라 위안부는 물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기억의 터 내 ‘대지의 눈’을 계획대로 이날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이런 서울시의 결정을 두고 “임옥상을 핑계삼아 여성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 없이 이를 이용해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에 나섰다”며 서울시의 조형물 철거를 막고 있다.

정의연은 “서울시는 재판 이후 임옥상씨가 설계를 맡았다는 이유로 ‘기억의 터’를 철거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기억의 터’는 임옥상씨의 것도 서울시 것도 아니며 오직 국민들의 정성과 마음을 모아 국민 모금으로 세운 것”이라며 “서울시의 ‘기억의 터’ 철거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이고, 여성폭력 저항의 역사 지우기다. 서울시는 성추행 가해자 임옥상을 핑계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통째로 지우려 하고, 여성폭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논의과정 없이 다급하게 ‘기억의 터’ 작품들을 철거하겠다는 서울시의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말 서울시가 성추행 가해자의 작품을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에 기억의 터 작품을 철거하겠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일과 현재도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처, 여성인권에 대한 다짐을 담아 기억의 터 공간을 어떻게 재조성할 것인지 로드맵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의연은 서울시의 ‘기억의 터’ 철거를 즉각 중단하고 “기억의 터의 장소성과 역사성, 시민 참여, 반성폭력의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지혜를 모아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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