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반기고 설렌 추석. 오랜만에 가족·친지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갖가지 풍성한 음식들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연휴가 이어진다. 반면, 명절이 돌아오면서 한숨부터 나온 사람들이 있다. 1형 당뇨, 아토피피부염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지만 이들에게 명절은 달갑지만은 않다. 어딜 가든 피해야할 음식 뿐이고, 언제 증상이 악화될지 모르니 약도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귀성길부터 귀경길까지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쿠키뉴스는 당뇨, 아토피피부염 환자가 그간 추석을 보내며 겪었던 고충과 함께 그들의 바람을 들어봤다.
“집을 어떻게 해놓고 살길래”… 가시 돋친 조언보단 격려를
최승현(가명·27세)씨는 어렸을 때부터 추석이 반갑지 않았다. 여느 초등학생들은 학교를 쉰다며 잔뜩 신났을 테지만 최씨는 어린 나이에도 명절에 친척들을 대할 생각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온 몸 곳곳 눈에 띄는 아토피피부염 증상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초등학교 시절, 최씨는 부모님을 따라 명절이면 제사를 지내기 위해 경기도 성남에 사는 조부모 댁으로 향했다. 환경이 바뀌는 탓인지, 평소 먹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인지 그 집만 가면 아토피 증상이 심해져 반드시 여분의 경구제와 도포제를 챙겨가곤 했다. 약을 먹고 자도 밤이면 가려움증은 심해졌다. 밤새 잠을 못자고 뒤척여야 했다. 겨우 잠들어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날에는 “왜 그렇게 게으르냐”는 삼촌들의 질타가 어김없이 이어졌다.
먹을 수 있는 음식도 거의 없다. 기름과 양념에 절인 제사 음식들은 피부염 증상을 악화시켰다. 명절에도 최씨는 나물류만 먹어야 했다.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먹지 않고 참아내는 동안 친지들은 계속 먹으라고 권한다. 일일이 사양하는 게 고역이었다.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건 부모님을 향한 친지들의 질책이었다. ‘집안 환경을 어떻게 해놓고 살길래 애가 아직도 피부병이 안 낫니’, ‘생 알로에가 염증에 좋다던데 써봤니’, ‘엄마를 닮아 애가 피부염이 생겼나’ 등 이런저런 참견이 끊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그저 웃어 넘기셨다. 최씨는 수시로 괴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최씨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른들로부터 ‘결혼은 어떻게 하냐’, ‘피부병이랑 일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 빨리 일을 구해라’ 등의 가시 돋친 말을 듣는다. 나와 같은 질환을 겪는 환자들은 모두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증상이 심해지는 건 집으로 돌아가면 나아지지만 가슴에 남은 말들은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른들도 속상한 마음에서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을 안다. 그저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와 따뜻한 포옹이면 아토피피부염을 겪는 이들에게 굉장한 힘이 된다”고 전했다.
“맛있는데 왜 안 먹니”… 같이 먹는 음식, 혈당 높이지 않게 만든다면
1형 당뇨병을 앓는 8살 아이의 엄마 김명진(가명·42세)씨는 지난 2012년의 일을 떠올리면 아직 식은땀이 난다.
그 해 추석은 아이가 1형 당뇨병을 진단 받고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었다. 귀성길 정체를 견딜 자신이 없어 기차표를 예매한 김씨는 서울에서 전라남도 영광까지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는 장거리 이동을 문제없이 해내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기차 안에서 수시로 혈당을 체크하면서 무사히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그는 아이와 함께 한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때 발생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무심코 확인한 아이의 혈당은 200~400mg/dL을 찍었다. 고혈당이었다. 급한 마음에 인슐린 주사를 계속 놓아도 혈당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외부 음식을 섭취한데다 움직임 없이 오래 앉아있던 게 화근이었다. 인슐린 효과가 한꺼번에 발휘된 걸까. 한 시간 뒤쯤 혈당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아이는 ‘답답하다’, ‘멀미가 난다’며 저혈당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당장 마땅히 먹여줄 것은 없고, 꽉 막힌 도로에서 휴게소까지는 거리가 한참 남아 있었다. 김씨는 “자꾸만 떨어지는 혈당으로 인해 아이가 잘못될까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다행히 버스 기사님에게 사탕이 있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론 언제 어디서든 저혈당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간식거리를 갖고 다닌다”며 “외부 음식을 먹거나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혈당 관리를 위해 더 긴장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명절로 인한 스트레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토피피부염 환자가 느끼는 것처럼 1형 당뇨 환자 역시 가족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었다. 김씨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1형 당뇨병에 대해 잘 모르면서 무심코 내뱉는 말들을 들으면 사람들을 외면하게 된다”며 “적어도 명절 때만이라도 1형 당뇨병이 어떤 질환이고,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알고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혈당을 높일 수 있어서 친지들이 다 같이 먹는 명절 음식을 안 먹거나 못 먹게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혈당 관리는 명절 때도 계속 돼야겠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혈당을 낮출 수 있는 방법 등을 친지들과 공유하고, 먹고 나서도 혈당 추이를 살피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추석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1형 당뇨 환자, 아토피피부염 환자가 명절에 느끼는 큰 스트레스는 가족들의 ‘가벼운 조언’에서 시작됐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격려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환자들은 입을 모은다. 일상에서 질환을 관리하면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이들에게 올해 추석 연휴엔 걱정과 우려의 말이 없어도 좋겠다. 가족, 친지를 위하는 마음만으로도 풍성한 명절이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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