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를 하는 얼굴에 청순한 미소가 폈다. 지난달 16일 서울 역삼동에서 가수 규혁(GYU HYUK)을 만났다. 그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건 2021년 Mnet에서 방영한 고등학생 랩 서바이벌 프로그램 ‘고등래퍼’에서였다. 깔끔한 발성과 청량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풋풋한 사랑과 패기 넘치는 청춘을 노래하는 스물한 살의 앳된 청년. 그는 “아직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너무 많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의 학창 시절은 K-Pop 전성기였다. 자연스럽게 아이돌 음악에 빠졌다. 통학버스에서 항상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문득 ‘나도 노래를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날 밤부터 그의 방은 작업실이 됐다. 노트에 여러 주제를 막무가내로 써보며 작사를 연습하고, 핸드폰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가며 음을 쌓았다. 밤새 작곡하고 다음 날 등교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독학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음악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점차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교류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글로벌 음악 공유 사이트 사운드클라우드에 자신의 노래를 올리면 또래들에게 연락이 왔다. 고향인 목포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친구들과 영감을 나눈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됐다.
작곡을 시작한 지 약 1년이 지난 2020년, 첫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 발매는 가족들도 모르는 비밀 프로젝트였다. 비밀리에 진행됐다는 의미에서 앨범명도 ‘B-Mily(비-밀리)’라고 지었다. 랩·힙합 장르에 록 사운드가 가미된 앨범은 앞으로의 음악 생활에 대한 청사진이자 예고편이었다. 그동안 취미로만 생각했던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음악을 반대했던 부모님의 인정도 얻었다. “부딪혀 봐” 어머니의 한마디가 응원이 됐다.
고등학교 졸업 직전,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고등래퍼4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방송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자작곡 ‘South City’를 부르는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7만 조회수를 달성했다. 홀로 상경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운 점도 많았다. 그는 “방송을 통해 대중의 평가를 처음 접했다”며 “내가 어떤 걸 잘하는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방송 이후 인간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훨씬 더 섬세하고 성숙해졌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발매한 첫 정규앨범 ‘Last Pure Luv’에는 가장 자신 있는 R&B와 팝 장르의 곡을 담았다. 풋사랑의 끝에서 비로소 사랑을 깨닫는 소년을 표현했다. 첫 정규앨범이란 곧 자신의 명함이었다. 그만큼 시각적 측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앨범 디자인부터 사진 수록까지 앨범 작업 전반을 홀로 해내는 데 장장 9개월이 걸렸다. 고된 시간이었지만, 음원 사이트에 올라온 앨범을 볼 때면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노래가 발매되었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돈으로도 못 사는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너무 깊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다. 평소 생각이 많지만 이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상념이 많을 때면 산책을 한다. 그에게 산책은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는 “늦은 밤 선선한 날씨에 이어폰을 끼고 한참 걷다 보면 생각이 전환된다”며 “좋아하는 노래를 몇 시간씩 들으며 걸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공연 직전에는 ‘긴장도 부담도 버리고 재밌게 놀고 오자’라고 다짐한다. 무대 위에서는 자신을 놓고 즐긴다. 걱정과 고민은 무대 위로 가져가지 않는다. 산책길의 저녁노을처럼, 힘들고 지칠 때 찾게 되는 가수가 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기회는 고등래퍼4였다. 프로그램에서 받은 응원과 피드백이 지금의 규혁을 만들었다. 21살, 앞으로 수많은 기회가 별처럼 쏟아질 나이다. 머지않아 자신을 찾아올 또 다른 기회를 위해, 그는 보컬 등 해보지 않았던 장르에도 도전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제가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저도 궁금합니다. 쭉 지켜봐 주세요”
박은지 쿠키청년기자 apples2000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