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흰지팡이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여의도역 음료 자판기에서 우엉차를 뽑았다. 생뚱맞게도 파워에이드가 나왔다. 사이다라고 적힌 버튼을 누르니 콜라가 나왔다. 코코팜을 눌렀더니 미에로화이바가 나왔다. 점자를 읽고 선택한 음료는 마음대로 나와 주지 않았다.
여의도역 말고도 이곳저곳 둘러봤다.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 위치한 자판기에는 점자 표기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읽어 보았다. 2500,1800,1600. 점자 스티커는 해당 음료의 품목과 이름을 제외한 가격만 나타내고 있었다. 점자만 보고서는 이 자판기가 휴지를 파는지, 초콜릿을 파는지, 컵라면을 파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6호선과 4호선, 5호선 라인에 위치한 역 15군데를 더 돌아봤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음료 자판기 자체에 점자가 새겨져 있는 경우는 아예 없었고, 자판기 버튼 위엔 대부분 점자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았다. 카드 단말기를 꽂는 자리와 현금을 넣는 입구 역시 점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서관이나 공원,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 설치한 음료 자판기에 점자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 장애인 인권 단체를 포함한 시민들도 여러 차례 지적한 문제다. 그러나 아직도 일상 ‘어디서나’ 점자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극히 일부의 시설 및 물건에만 쓰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교통공사도 인지는 하고 있지만, 지하철 내에 설치하는 음료 자판기가 외부 업체 공모를 통해 임차하는 구조라서 공사 측에서 직접적인 관여·관리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임차인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이 드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며 “그러나 인권단체 등 사회적 목소리를 반영해 앞으로 나오는 입찰 공고에 점자 표기 권고 사항을 추가하려고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점자 스티커가 붙어 있었던 여의도와 국회의사당 역을 관할하는 서울메트로9호선 관계자도 “2~3주에 한번씩 담당 직원들이 직접 자판기 점자 현황을 확인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며 “다만 자판기 내에서 음료 위치가 바뀌는 등 변화가 있으면 확인하고 고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교통약자 및 장애인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전국 등록장애인 기준 시각장애인 인구는 약 25만 명이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지하철과 철도 등 아직 많은 곳이 점자 표기가 부족하다. 자판기를 제작부터 판매, 설치하는 것까지 얽혀 있는 사람과 기관이 많아 (점자 문제를)빠르게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5일은 시각장애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흰지팡이의 날”이라며 “단체에서도 지속적으로 공사 등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