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1950년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받은 차별과 냉대 속에서 야구선수의 꿈을 펼쳤던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흑인혼혈 야구선수 김영도 씨다. 동아대학교 야구부 4번 타자였던 김 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Baseball Harmony, 감독 Joo-il Gwak·Amy Hutchinson)’가 최근 해외에서 호평받고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김 씨는 9살 때 고아원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으로 동대문중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하며 두각을 보였다. 야구 명문 고등학교인 동대문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1루수 4번 타자로 활약했다. 김 씨는 1970년 동대문상고의 유일한 대통령배 결승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1968년에는 동아대학교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피부색 때문에 실업팀에 가지 못한 김 씨에게 고 안영필 감독이 손을 내민 것. 동아대 시절에도 3, 4번 타자를 맡으며 ‘그라운드의 와일드 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김 씨는 동아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김 씨는 졸업 후 부산 대신중학교에서 체육 교사와 야구부 감독까지 맡으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때 김 씨는 이종운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과 윤동배-윤형배 형제를 키워냈다. 경상도지역 혼혈인협회 회장을 10여 년간 맡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김 씨는 어렸을 적 겪었던 소외와 아픔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1982년 레이건 대통령이 혼혈인 이민법을 제정하면서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 씨는 이민을 떠나 미국에서 거주 중이다.
한국 야구계는 아까운 인재를 놓쳤다. 프로야구에서 기량을 펼쳤더라면 한국 야구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미국 이민 후 야구를 잊고 살던 그는 비로소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에서 야구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 씨가 스스로 고아원에 들어간 사연, 어머니의 산소 방문, 35년 만에 다시 잡아 본 야구 감독용 노크배트 등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김 씨는 지난해 동아대를 방문해 캠퍼스와 야구부 훈련장 등을 둘러보며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베이스볼 하모니’는 ‘미국 기독교 영화제’에서 베스트 다큐, 베스트 감독, 베스트 작가, 베스트 음악·편집상을 휩쓸었다. ‘선댄스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하다. 7일과 10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컬버 시티와 산타클라리타 시티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부산=남효원 기자 nhw3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