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활용이 국제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부족한 인프라와 높은 가격 등으로 ‘RE100’ 이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도록 유도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태양광과 풍력, 수력, 바이오가스 등 친환경 발전으로 생산한 에너지를 사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에 목적이 있다. RE100 참여 기업들은 전력 전환 계획을 제시하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 민간 차원의 캠페인이지만 참여 기업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기업들은 RE100 계획대로 이행하고 있을까. 24일 영국 기반의 비영리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과 ‘탄소공개프로젝트’(CDP)가 앞서 발간한 ‘2023 RE100 연간 보고서’를 분석했다. 지난 2022년 말 기준 국내 RE100 가입 기업 30곳의 RE100 평균 이행률은 12%에 불과하다. 자체 보고가 아닌 공시에 따른 수치다. RE100 이행 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제외했다.
국내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하이이테크놀로지가 56%로 그나마 가장 높은 이행률을 보였다. 한국수자원공사(50%), 아모레퍼시픽(34%), SK하이닉스(30%), 삼성전자(19%), 기아차(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행률이 0%인 곳은 9곳에 달했다.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의 평균 이행률은 50%다. 미국의 애플 95%·메타 94%,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92%, 독일 BMW 80% 등은 RE100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에 달성에 힘을 쏟는 이유는 RE100이 수출·납품·투자 등을 위한 조건으로 붙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BMW가 LG화학에 부품 납품 전제조건으로 RE100을 요구해 계약이 무산되기도 했다. 애플은 주요 공급망 기업에게 △재생에너지 75% 사용 △조림 등으로 25% 온실가스 흡수 △지역 공동체 주도 기후회복 등 강력한 탈탄소를 요청 중이다. RE100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기업 운영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문제는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2022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은 9.2%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전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해외는 다르다. 유럽 84%, 북미 66%, 멕시코 54%, 중국 50%, 베트남 30%, 일본 25%, 인도 23% 등이다.
국내에서 사업 중인 RE100 가입 165개사를 조사한 결과, 이 중 66개 기업(40%)은 한국을 ‘재생에너지 조달에 장벽이 있는 국가’로 꼽았다. △조달망 선택권 부족 △고비용 및 제한된 공급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국내 기업의 RE100 이행률 또한 많은 부분이 국내 사업장이 아닌 해외 사업장에서 충당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기업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발전사업자와 기업 간 전력구매계약(PPA)을 선호하지만, 국내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물량도 없다. 이를 따내기 위한 장벽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한국의 지리 여건 자체가 재생에너지 발전에 적합하지 않아 어렵다. 한국에서 나오는 재생에너지 전체를 다 모아도 대기업 공장 하나 돌리면 끝이라는 말도 있다”며 “기업도 RE100 달성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어느 정도 고려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국내 재생에너지 가격은 해외와 비교해 매우 비싸고 발전 용량도 많지 않다”며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으로서는 한계를 느낀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출처 등의 정보가 ‘깜깜이’로 운영돼 온 문제도 있다. RE100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재생에너지 구입 출처 중 57%는 ‘출처를 알 수 없음’으로 기재됐다. 한 자릿수 또는 10%대 초반인 해외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CDP 국내 파트너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기업들은 RE100 이행 보고서 작성 시 혼합 재생에너지 출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주로 ‘한국전력’ 또는 ‘한전 녹색프리미엄’ 등으로 기재했기 때문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경우, 투자자와 관계 기업에게 신뢰를 주기 어렵다는 우려가 인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일일이 세부적인 정보를 발전사에서 기업에 주지 못 한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부터는 재생에너지의 출처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할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전문가는 RE100 달성을 위해 정부의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승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연구원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 비중을 상향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오는 2030년 기준 수요에 많이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재생에너지 계획 입지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세우고 기업 조달까지 용이하게 연결토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RE100은 기후문제가 아닌 산업·경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관련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확장할 전략과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홍 교수는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을 막고 있는 규제를 혁파하고 전력시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며 “현재의 구조로는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뒷받침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