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등산을 즐기는 김혁수(66)씨는 최근 걸을 때마다 다리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겪으면서 산에 오르지 않게 됐다. 동네에서 정형외과 진료를 본 김씨는 전문의의 허리디스크 소견을 접했지만 치료를 이어가도 증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신경외과, 통증의학과도 찾아가 봤지만 호전이 없었다.
보행 시 다리가 아픈 경우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형외과 등에서 치료를 받고 난 뒤에도 차도가 없거나 증상이 심해지면 말초혈관질환을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말초혈관질환은 동맥경화로 인해 다리로 가는 혈관에 협착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하지동맥폐색증이라고도 일컫는다. 가만히 앉아있는 상태에서는 특별한 증상이 없으나, 걷거나 운동할 때 다리에 통증이 생기고 휴식하면 다시 증상이 가라앉는 특징을 보인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환자에서 주로 나타나며 특히 흡연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60~70대 환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성에서 여성보다 2~3배 많이 발생한다. 최근에는 만성질환을 앓는 연령대가 낮아져 50대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말초혈관질환이 진행되면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다가 무감각해지고, 피부가 차갑게 느껴진다. 상태가 심하면 발가락 색깔이 검푸르게 변하거나 상처가 잘 아물지 않고, 상처가 없는 부위에도 궤양이 생긴다. 발가락으로 가는 주요 혈관이 모두 막히게 되면 근육, 신경, 피부에 괴사가 일어난다.
김형수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당뇨가 있는 환자는 상처가 잘 낫지 않고 염증이 악화되지만 증상을 느끼지 못해 병원을 찾는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말초혈관질환을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하지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발가락 절단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말초혈관질환으로 심장내과를 찾은 환자 중에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다른 진료과 치료를 받고나서 오히려 증상이 심해졌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심장내과에선 동맥경화도를 측정하는 ‘맥파전달속도 검사’를 통해 하지로 가는 혈류의 협착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보이면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협착 유무와 위치, 범위 등을 정밀하게 살핀다.
질환 초기에는 동맥경화를 악화시키는 흡연 등 위험요소를 줄이면서 꾸준한 운동, 체중 감량, 식이요법 등 보존적 치료를 갖는다.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는 약물치료를 병행해 당뇨, 혈압 등을 조절한다. 스텐트 삽입술 등 혈관을 확장하는 시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김중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말초혈관질환 치료의 목적은 혈관 협착으로 인한 통증을 줄이고, 염증이나 감염의 회복을 도와 혈액 순환을 증가시켜 조직 손상을 줄이는 것”이라며 “하지 절단 같은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절단 부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상처가 아무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동년배에 비해 걸음걸이가 많이 느리거나 엉치뼈에 통증이 있으면 말초혈관질환 관련 검사를 받는 게 좋다. 김형수 교수는 “뇌경색, 뇌출혈, 심근경색 등으로 많이 사망을 하는데 정작 혈관질환에 대한 건강검진은 부족한 편이다”라며 “말초혈관질환이 의심되면 팔과 발목의 혈압 차이를 보는 발목상완지수(ABI) 검사로 저렴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아 삶의 질을 개선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