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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면 더 건강하고 맛있는 물이라고 생각하죠. 같은 곳에서 퍼 왔는데 가격이 다를 줄은 몰랐네요.”
18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 이곳에서 소비자들은 묶음으로 된 생수(먹는샘물)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카트에 실었다. 20대 남성 두 명은 가장 저렴한 생수 묶음을 구매했다. 잠시 후 생수 코너에 온 한 70대 고객은 포장지를 보다가 더 비싼 물을 골랐다. 그는 “그래도 비싼 게 더 건강하지 않겠냐”며 “신경써서 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1인 가구 증가와 유통업체들의 자체 개발상품(PB) 확대로 생수시장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의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약 29억5000만달러 수준이었던 국내 생수 시장 규모는 지난해 42억6000만달러까지 성장했다. 특히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약 7.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먹는 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수원지와 미네랄 함량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가격이 제각각인 생수 시장 구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자취를 하는 직장인 A씨는 “원룸에 거주하다보니 집에서 생수를 묶음으로 사서 마신다”며 “사회초년생 중에 물의 소재지를 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주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제품인 만큼 소비자에게 조금 더 친절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B씨도 “수원지와 미네랄 함량이 다르지 않은데 가격이 다른 건 업체들의 입장이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제품을 구매하고 다른 가격을 내는 것 뿐인데, 막상 알게 되니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팔도 맑은샘수’, ‘웅진식품 가야 G워터’, ‘한국청정음료 몽베스트 생수’는 취수원이 동일하다. 각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세 곳 모두 경기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 소재의 암반지하수를 취수해 제품을 생산했다. 칼슘, 칼륨 나트륨, 마그네슘 등 미네랄(무기질) 함량도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가격은 달랐다. 이날 각 사 공식몰에서 판매하는 2L 12병 기준 웅진식품 가야워터는 9800원, 몽베스트 공식몰 가격은 1만800원이다. 팔도 맑은샘수는 유통업체별로 판매가격이 다르며 2L 1병 출고가 기준 1050원이라는 설명이다.
‘풀무원샘물’과 ‘코스트코 커클랜드 시그니춰 먹는 샘물’도 취수원은 경기 포천시 이동면 화동로 소재로 같았지만 가격에는 차이를 보였다. 두 제품 모두 제조원은 풀무원샘물이었으며 판매원만 각각 풀무원과 코스트코 코리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브랜드별로 물류비·판매관리비 등 유통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체 규모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나 각 사의 정책 등이 다르다보니 가격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소비자 기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단체의 활동이나 개인이 알게 되는 정보가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 업계의 신뢰도를 낮추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업체별로 생산량과 유통, 홍보에 쓰는 비용이 다른 점은 이해가 가지만, 담배의 경우도 제조사마다 제품이 다른데 가격은 4500원인 제품들이 많지 않냐”며 “또 일부 브랜드는 프리미엄을 표방하고 있어 소비자들은 브랜드에 따라 조금 더 좋은 물인줄 알고 사먹는다. 같은 취수원에서 생산한 먹는샘물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건 사실상 소비자 기만”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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