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72)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72)

조셉 지누 부부의 초상과 <밤의 카페 풍경>

기사승인 2025-06-09 09:35:07
빈센트 반 고흐, 조셉-미셀 지누의 초상, 캔버스에 오일, 1888년 10월 하순~11월 중순, 크롤뢰 뮐러 미술관

강렬한 눈빛 속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세련된 리본으로 묶인 흰색 넥타이는 그가 가장 아끼는 정장에 어울리는 우아한 마무리다. 이 옷은 교회에 갈 때나 결혼식, 장례식에 즐겨 입는 단벌 양복일지도 모른다. 턱을 치켜든 그의 태도는 단순한 오만이 아닌, 스스로를 확신하는 힘이 느껴진다.

서울 전시를 마친 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 이 작품은 크롤뢰 뮐러 전시회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한국으로 건너온 여러 작품 중에서도, 이번 전시에는 <조셉-미셀 지누의 초상>, 들라크루아 판화 모작 <선한 사마리아인>, 그리고 <라부 여관의 딸>이 공개되었다. 나머지 작품들은 좀처럼 전시될 기회가 없어 더욱 귀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빈센트는 머리 주위를 선명한 연두색의 과감한 붓질로 감싸듯 표현하며, 마치 후광처럼 빛나게 했다. 이는 저녁 가스등 아래에서 작업하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당시 고갱과 함께 노란 집에서 생활하던 빈센트는 그의 방문을 앞두고 스튜디오에 가스를 설치해 늦은 밤까지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황록색 빛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가스등의 빛은, 지누의 강렬한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여인, 1888,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고갱, 다시 편지를 보내주어 고맙네. 이곳에 돌아온 후 매일 자네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네. 파리에서는 겨우 사흘 머물렀을 뿐이네. 도시의 소음이 내게 너무나도 나쁜 인상을 남겨, 조용한 시골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편이 현명하다고 판단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자네 집에도 들렀을 텐데 말이네.

자네의 그림을 따라 그린 '아를의 여인'이 자네 마음에 들었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네. 나는 그 그림을 그릴 때 자네의 데생을 최대한 존중하려 노력했지. 하지만 단순한 선묘 너머, 색채를 통해 자유로운 해석을 펼쳐 보이며 나만의 표현을 담아냈네.

흔치 않은 기회지만 '아를의 여인'은 분명 우리 둘이 함께 작업했던 시간을 대변하는 작품이라 생각하네. 다른 이들도 그렇게 받아들여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지.”

빈센트 반 고흐, 아를레지엔: 마담 조셉-미셀 지누(마리 줄리앙, 1848~1911), 1888~1889, 캔버스에 유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오르세에 있는 작품에는 빨간 양산과 초록 가죽 장갑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반 고흐 미술관에는 연한 초록색의 책 두 권을 놓았다.
메트로폴리탄의 작품에는 빨간 커버의 책과 펼쳐진 책을 그렸다. 1888년 11월 편지에 “한시간 만에 완성된 아를레지엔”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1895년 판매될 때까지 지누 부인의 소유였다. 빈센트는 모델을 서면 모델료 대신 그림을 한 점 더 그려 주기도 하였다. 1951년에 샘. A. 루이스온이 유증한 작품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미술관에서 기증한 이들을 보면 가장 부러운 일이다. 

지누 부인의 초상화 중 최근에 본 작품이라서 그런지 색감도 가장 선명하고 아는 이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는 빈센트의 초상화와 함께 도록에도 실리지 않은 작품이다. 빈센트의 파리 시절 점묘로 그려진 초상화 앞에선 관람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 있다. 어느 미술관에서도 줄을 서 있는 경우는 거의 빈센트 반 고흐 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누 부인의 초상 5점 중 한 작품은 아직 실물로 보지 못했다. 고갱에게 우정의 표시로 선물한 이 초상화는 1929년 미국 소아과 의사 해리 백윈이 소장하였다. 2006년에 실시된 경매에서 4033만6000달러(약 470억원)에 팔렸지만, 누가 소유하고 있는 지 공개되지 않았다. 다른 초상화와 달리 하얀 꽃이 그려진 벽지에 연한 핑크색 옷을 입고 상파울루 미술관의 그림처럼 책이 두 권 놓인 그림이다.

“한 달 동안 병을 앓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네. 하지만 결국 이 그림을 완성했어. 고갱, 그리고 우리를 이해하는 몇몇 사람들 만이 그 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언젠가 세상이 우리를 온전히 이해해 주길 바라네."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 서양미술사에 기록된 두 거장의 공동 작업은 지누 부인의 초상화로 영원히 빛나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지누 부인, 1889, 상파울루 미술관

고독한 나날을 보내던 빈센트를 향한 지누 부인의 따스한 배려가 조용히 스며든다. 혼자 지내는 그의 쓸쓸함을 헤아린 듯,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카페에서 냅킨 위에 데생을 하던 빈센트를 본 지누 부인은 장부를 기록하려던 노트를 그에게 선물했다. 그 노트는 단순한 필기 도구가 아니라, 그의 창작이 머물 공간이었다. 빈센트는 대나무를 깎아 만든 펜을 손에 쥐고 언덕 위로 올라가, 그곳에서 데생을 했다. 바람이 지나가는 언덕에서 그는 붓 대신 펜을 들고,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그려 나갔다.

무졸 요양원으로 떠나기 전, 빈센트는 하녀에게 부탁해 데생 노트를 지누 부인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그가 지누 부부에게 주려 했던 65개의 스케치가 담긴 장부는 세월 속에 묻혀 있다가, 126년이 지난 2016년에야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빈센트의 잃어버린 기록은 마침내 사람들의 손에 닿았고, 그의 진심은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금 피어났다.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격정의 색채로 그린 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풍경(드 라 가르), 1888년 9월, 72.4x92.1cm, 예일대 아트 갤러리

빈센트는 <밤의 카페>에서 단순한 풍경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담아낸 색채의 실험을 시도했다. 가스 불빛 아래에서 밤새 문을 여는 이 카페는 돈이 없거나 너무 취해 여관에서 받아주지 않는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된다.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3시 5분을 가리키며 긴 밤의 끝자락을 암시한다.

붉은 벽과 칙칙한 노란빛, 초록 당구대 위로 퍼지는 주황색과 녹색 불빛—서로 충돌하는 색채는 이 공간이 지닌 뜨겁고도 격렬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그는 색을 통해 밤샘의 소굴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끔찍한 열정을 그려내고자 했다. 노란 가스 등이 드리운 빛 속에서 밤의 색채는 더욱 지적이고 감각적인 공간을 형성했다.

작품 속의 카페 주인 조셉 지누는 화덕 구석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빈센트는 그의 하얀 옷이 레몬색과 빛나는 연녹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가스 불빛 속 색채의 변화를 포착했다. 그는 지누와 그의 아내를 초상화 모델로 삼으며 그들의 존재를 그림 속에 남겼다. 그러나 이 그림의 주인공은 초록 천정과 당구대, 빨간 벽과 노란 가스등이다. 피곤에 찌든 인물들은 배경 속 작은 존재인 검은 선으로 묘사되었다. 

네덜란드 시절부터 빈센트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개인의 특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이들은 드 라 가르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통행금지가 남아 있던 시절에 야간열차가 도착한 역사 근처 평범한 다방에서 피어나는 끔찍한 열정을 초록, 빨강, 노랑으로 찬란하게 그렸다. 

1907년,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게르는 파리의 갤러리아 벤자민-준에 이 작품을 매각했고, 1908년 모스크바의 사업가 이반 모르조프가 이를 소유하게 되었다. 모르조프는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의 열정적인 수집가였다. 이 그림은 볼셰비키 혁명 후 국유화되어 모스크바 국립현대서양미술관으로 이전되었다. 모르조프의 컬렉션은 마티스의 작품을 수집한 세르게이 시슈킨의 컬렉션과 함께 전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0~30년대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는 국가 산업화를 위한 외화를 충당하기 위해 수많은 공공미술 컬렉션을 해외에 판매했다. 그렇게 빈센트의 <밤의 카페>는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코네티컷 주 예일대 아트 갤러리에 소장되고 있다.

붉은 벽과 노란 빛 사이에서 불안과 열정이 교차하는 밤, 빈센트는 색채의 충돌 속에서 인간의 본능을 담아냈고 그 강렬한 붓질은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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