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국계의 코스트코’로 불리는 창고형 약국이 성남시에 문을 열며, 이를 둘러싼 직역단체 간 의견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약사단체는 의약품 오남용과 전문성 약화를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반면, 소비자와 제약업계는 소비자 중심의 판매 채널 확대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에는 최근 대형마트 수준의 ‘창고형 약국’이 개설됐다. 약 430㎡(130평) 규모의 이 약국은 전문의약품을 제외하고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반려동물 의약품 등 총 2500여 개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영양제는 기존 대비 20~30% 저렴하게, 일반의약품은 종로 일대 이른바 ‘약국 성지’ 수준의 할인 가격에 판매된다. 대형 약국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의약품을 대량 구매해 유통 마진을 줄였고,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구조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고 약국 측은 설명했다.
소비자는 마트처럼 쇼핑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며 제품을 직접 비교하고 고를 수 있다. 전 품목에 가격표가 붙어 있고, 건강기능식품은 소용량 패키지로 체험 구매가 가능하다. 약국의 기본 기능도 유지된다. 고객이 약을 담아 오면 약사가 카운터에서 복약 설명을 하거나 상주 약사에게 문의할 수 있다. 향후 셀프 계산대, 키오스크 서비스 도입도 예정돼 있다.
소비자 반응은 긍정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는 이 약국을 직접 방문한 후기가 잇따르고 있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가격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 소비자가 직접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구조는 합리적인 유통 채널로 평가된다”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두통약, 감기약, 소화제 등을 미리 구비해두려는 소비자에겐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말했다. 이어 “현행 일반의약품 유통 구조는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불투명한 측면이 있다”며 “창고형 약국의 등장 계기로 약가 표시제도 및 정보 제공 방식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약업계도 판매 채널 확대에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약사단체의 반발과 광고·마케팅의 과열 가능성에는 염려를 나타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유통망 확대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약사단체 반발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주도의 구매 흐름은 앞으로 하나의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에 따른 업계의 광고비 과열 양상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반면 약사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약사회는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대응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약사 커뮤니티에서는 “약물 남용을 부추기는 구조”, “복약지도 없는 셀프 계산 방식은 소비자에게 위험하다”, “약사법을 무시하고 약사의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일”이라는 등의 성토가 잇따르고 있다.
한 약사단체 관계자는 “이런 형태의 약국은 소비자들의 경각심을 약화시키고 대량 구매를 부추겨 약물 과잉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복약지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본질적으로 수익 중심 구조이기 때문에 과소비를 유도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요소가 개입될 소지도 있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