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시행 됐는데…준비 안 된 진료지원업무 규정에 혼란

‘간호법’ 시행 됐는데…준비 안 된 진료지원업무 규정에 혼란

의정갈등 이후 전담간호사 62% 급증
“국가자격증 부여로 전담간호사 제도화해야”
교육 체계 두고 간협·복지부 입장 차
복지부 “진료지원업무, 의사·간호사 협업해야”

기사승인 2025-07-03 18:45:28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이 공동 주관한 ‘올바른 간호사 진료지원 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 시행을 위한 토론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간호 현장에 새바람을 예고한 ‘간호법’이 시행됐지만, 정작 실무를 뒷받침할 진료지원 업무 수행규칙과 교육 방안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혼선이 커지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간의 역할 구분이 흐려지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진다. 간호사들은 업무 과중과 법적 책임 부담을 호소하며 명확한 제도 확립과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간호협회(간협)와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공동 주관한 ‘올바른 간호사 진료지원 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 시행을 위한 토론회’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미애·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전종덕 진보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지난달 21일부터 간호법이 시행됐지만 전담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담은 하위법령 마련이 미비해 임상 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의료 현장에선 전담간호사들이 여전히 명확한 업무 범위나 법적 보호 없이 의사의 업무 일부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의정 갈등 여파로 전공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전담간호사 채용이 늘고 전공의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간협에 따르면 의정 갈등 이후 전담간호사 수는 61.8% 급증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처방, 시술, 수술동의서 작성 등 의사 업무를 일부 수행하고 있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의정 갈등 이후 의사 업무가 전담간호사나 일반간호사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환자 안전에 위협이 되며, 간호사들의 정서적 소진과 불안, 이직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숙련된 간호사가 고난도 진료지원 업무를 맡는 구조로 바뀌었으며, 일반 병동 간호사들도 전담간호사 못지않은 진료지원 업무를 하고 있어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간협 조사에 따르면, 전국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4만명 이상의 간호사가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 중이다. 관리 주체는 간호부서, 진료부서, 행정부서 등으로 제각각이었다. 진료지원 간호사 교육을 시행 중인 병원은 63%에 달했지만, 원내 교육지침이 마련된 경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교육 제공자의 절반은 간호사였고, 의사가 교육하는 경우는 16%에 불과했다.

오 국장은 “전담간호사 교육은 반드시 국가 차원의 표준화와 이력 관리 체계가 필요하며, 교육기관의 자격 지정·평가를 시급히 진행행야 한다”면서 “전담간호사 제도 안착을 위해선 명확한 자격 요건이 필요하며, 단순 교육 이수가 아니라 국가 자격증 부여 방식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아 경희대 간호과학대학 교수는 “단순히 전담간호사 교육을 위탁만해선 안 되고, 교육 운영 현황 지침 준수 여부와 결과 분석, 성과 관리 등 전반적인 관리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보건복지부는 정책 총괄과 기준 제시를 맡고, 간협은 교육 운영과 자격 관리의 실무 주체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간협은 11개 분야의 전담간호사 범주를 제시하고 있으며, 추후 이를 더 세분화하거나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 교수는 “간협은 작년부터 전담간호사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전담간호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간호법 통과가 끝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시행될 때까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질 관리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담간호사 교육기관은 보수교육 경험과 인프라를 갖춘 대학과 간협이 맡아야 교육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실무 경험이 부족하거나 간호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기관이 교육을 맡으면 전담간호사의 자격 취득이나 현장 정착에 큰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전담간호사 교육 및 자격 체계에 대한 간협과 복지부의 입장 차는 극명하다. 간협은 공통 이론·실기 120시간, 분야별 이론·실기 80시간, 현장실습 200시간 등 총 400시간의 교육 과정을 제안하고 있다. 또 간호사 면허와 3년 이상의 임상경력, 표준 교육 이수 및 자격시험 합격 등을 자격 요건으로 제시하고, 자격증은 5년마다 갱신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아울러 중환자·응급, 내과, 수술, 재택 등 11개 분야에 대한 자격 고시안을 공개해 분야별 자격시험 도입과 체계적 관리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복지부는 총 200시간의 교육만 이수하면 진료지원 업무 자격을 인정하며, 교육기관 운영과 자격 부여를 병원장의 재량에 맡기고 복지부의 서면 승인만 받도록 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경림 간협 회장은 “간호법 시행은 환영하나, 정부의 간호사 진료지원 업무 수행 규칙은 우려된다”면서 “병원 자체 교육만으로 진료지원 업무 자격을 인정하려는 것은 의료 현장의 혼란과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간호 전문성을 존중하고 국민 안전을 지키려면 국가 공인 교육과 면허 체계 안에서 진료지원 업무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간호법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행위별 세부 조정과 현장 의견 수렴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박혜린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상급종합병원과 전문병원, 중소병원의 진료 환경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특정 분야 자격을 획득했다고 해서 모든 기관에서 동등한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업무 실태와 업무 수행 가능성에 맞춘 유연한 운영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박 과장은 “향후 전담간호사 교육기관 지정·평가제도 도입 시 간협이 전문기관으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반영할 예정”이라며 “진료지원 업무는 특정 직역의 소관 업무라기보다, 의사와 간호사가 협업해야 할 영역이다. 제도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 단체들의 적극적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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