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해명 기자회견에서 상대 여성을 줄곳 ‘가이드’라고 불렀다.
“먼저 여자 가이드와 함께 한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대체 누가 가이드고 누가 이 가이드를 받아야 하느냐, 도대체 누가 가이드냐고 제가 여러차례 질책을 했습니다.”
“그 가이드에 대해서 그 가이드에게 이 자리에서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며칠전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백수가 돼 버린 윤씨는, 미국에 있을 때에는 ‘인턴’이나 ‘여대생’이라는 표현을 줄곳 썼다고 한다. 미국에선 인턴이 한국에선 가이드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청와대 대변인 시절엔 인턴으로 보였던 여성이 이제는 가이드로 보였는지.
물론 인턴이 아니라 가이드라고 해서 성추행 혐의가 더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이드라고 표현하면 차를 타고 움직이는 경로를 안내해주는 여행사 직원처럼 들린다. 밤 늦은 시각에 술집을 찾아 안내해주는 일도 여행사 직원이라면 업무의 연장이자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면 인턴이라고 하면 대사관 즉 대한민국 정부에 고용된 직원이라는 의미가 부각된다. 대사관의 외교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을 지시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는 의미 또한 분명해진다. 말하자면 ‘직장내 성희롱’ 혹은 ‘공무 중의 성추행’이라는 의혹 내용을 조금이라고 덜 부각시키기 위해 인턴이라는 말 대신 가이드라는 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까지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 노릇을 했던 윤씨는 실제로 상대 여성이 가이드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한 취재 기자들은 “윤씨나 기자들이나 인턴을 가이드라고 부른 적이 없다. 항상 인턴이라고 부르거나 실제 이름을 붙여 OO씨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공식 지위도 역시 인턴이다. 주미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대사관 각 분야의 인턴 모집 공고가 떠 있다. 급여는 없고 숙식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설명해 놓고 있다.
재외공관에서는 대통령의 현지 방문과 같은 대형 이벤트가 있어 공관 직원만으로 행사를 치르기 어려울 때 필요한 지원 인력을 단기로 채용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들 보조인력을 보통 인턴으로 호칭한다. 이 인력은 주로 대형 이벤트와 관련된 사무, 의전, 공보, 통역 업무 등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가령 우리 대통령의 해외방문 시 현지에 한국 언론을 위한 프레스센터가 만들어지는데 업무보조 인력들은 원활한 프레스센터 운영을 지원하기도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인턴 채용은 각 공관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하고 있다”면서 “본부에서는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는데 사안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예산 관계로 인턴 채용은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번 경우처럼 단기 행사를 위한 인턴의 경우 소액이라도 일당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일당을 받든 못 받든, 인턴으로 채용되면 정상 행사와 같은 대규모 외교 행사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고 실무 경험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대학 재학중인 학생은 물론 졸업생들도 무급과 유급을 가리지 않고 인턴에 지원하는 이유다. 특히 한국대사관의 인턴에는 현지에 있는 유학생이나 교포 자녀 등이 지원한다.
교포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미씨USA에는 윤창중씨의 ‘가이드’ 발언을 비난하는 게시물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 정부의 외교 업무를 돕고자 자원한 교포 자녀를 부르는 호칭으로는 적절치 못한데다,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상대 여성의 호칭마저 맘대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인턴과 가이드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의 차이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인턴이라면 왠지 유능한 젊은 인재가 떠오르지만 가이드라면 지리를 안내하는 정도의 현지인이라는 인상을 준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확실하게 수사해줄 것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자”
아무래도 윤씨가 사과해야할 일이 또 하나 늘어난 것 같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