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씨(27·가명)는 최근 회사를 관뒀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휴가’ 때문이었다. 휴가 사용에 눈치를 주는 사내 분위기에 반발한 김씨는 끝내 퇴사를 선택했다. 그는 말한다. “스마트워크 같은 건 아예 바라지도 않아요. 최소한 법으로 정해진 휴가는 쓸 수 있도록 해줘야죠. 야근은 당연시하면서 반차라도 쓸라치면 얼마나 눈치를 주던지요. 입사 전에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강조할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비단 김씨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가족 같은 회사’ 혹은 ‘가족 같은 분위기’에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족’의 정(情)을 빙자해 열정페이나 수당 없는 야근 및 휴일 근무를 은근히 강요하는 기업이나 기관들이 많다는 것. 이들 기관과 기업이 강조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조직의 논리를 구성원에서 강요하는 방식이 대다수다. 노동자들은 정 대신 법이 규정한 노동자의 권리나 제대로 챙기라고 울화통을 터뜨린다.
한국인은 지나치게 많이 일하고 턱없이 적게 쉰다. 최근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접어들고 있으며, 초저출산 등 가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건강과 개인 삶에 미치는 악영향이 속속 보고되면서 일과 삶의 균형, 일명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업무 후 카카오톡 등 메시지 금지를 법제화하자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과연 보장되고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아직 요원하다.
물론 정부도 합리적인 노동을 보장하려는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긴 하다. 지난 2008년부터 여성가족부(장관 정현백)가 시행해 온 ‘가족친화인증’이 대표적이다. 이는 ‘가족친화 사회 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15조), 정부는 노동자의 일과 생활 균형에 적극적인 기업과 기관을 심사, 여가부 장관의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인증은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정시퇴근 등 가족친화제도 실행 실적이 60점, 최고경영자의 의지 20점, 가족친화경영에 대한 직원 만족도 20점을 종합해 결정된다. 제도를 시행해온지 10여 년 동안 총 2802개의 기업과 기관은 인증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 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지난해부터 공공기관의 인증을 의무화한 것이나 최고경영자의 의지를 평가 항목으로 넣은 것이 그렇다.
이렇듯 공공기관에 한에서는 적어도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이뤄졌지만, 민간 기업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 “일도 못하면서 휴가는 다 챙겨 쓴다”며 눈총 일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휴가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거듭된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수년에 걸쳐 받은 ‘전설의 여직원’ 이야기나, 생리 등 보건휴가가 유독 금요일에 집중되는 현상 등 이야기는 비아냥거림이 대부분이다. 전제는 동일하다. 개인보다 조직이 먼저이며, 자기 휴가를 꼭꼭 챙기는 직원이 얄밉다는 인식. 이는 워라밸을 위한 새로운 조직 관리 시스템이 필요함에도 아직 기업 및 기관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심화되면, 이러한 불만은 남녀 간의 대결 국면으로 흐르기도 한다. 회사원 박준영씨(35·가명)의 말을 들어보자.
“남자들은 죽어라 일하는데, 출산휴가나 생리휴가를 다 받아 챙기는 여직원들을 보면 솔직히 얄밉죠. 이해는 하지만, 빠진 직원에 대한 보충 인원을 배정하지 않기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더 업무가 늘어나거든요.”
그런가하면 정당한 권리조차 눈치를 봐야 하냐는 반문도 나온다. 프랑스계 기업에 재직 중인 최은영(32·가명)씨는 “유럽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휴가일수부터 휴가 보장에 대한 조직의 인식 자체가 다르다”며 “최고경영자의 의지뿐만 아니라 사회 저변에 휴식을 보장해야한다는 의식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