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1년 여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제주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끔 음식에 관해 문의를 한다. ‘어느 식당의 어떤 음식이 맛있느냐’가 핵심인데 매번 도움 되는 답을 주지는 못한다.
제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철음식이 있다면 흑돼지삼겹살과 고기국수이고 계절별로는 자리돔물회, 옥돔구이 그리고 각종 귤일 것이다. 이중 흑돼지삼겹살과 옥돔에 관해서는 꼭 경험해보라고 추천하지 못한다.
함덕해변 근처를 가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식당음식이 흑돼지삼겹살구이다. 어디를 가든 식당마다 보이니 요즈음엔 제주에서 흑돼지를 얼마나 많이 키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옥돔구이 음식에 대해서는 다른 이유로 말을 아낀다. 가격 때문이다. 진공포장된 제주산 옥돔 가격이 통상 마리당 2만원이고 조금 크다 싶으면 3만원이니 시내의 식당에서 아무리 싸게 공급받는다 한들 맛을 음미할 만한 충분한 크기의 옥돔을 내 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제주여행 삼 개월 만에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음식을 찾아냈다. ‘제주도 여행하다가 시장함을 느끼면 가까운 해장국집을 찾아가십시오. 점잔빼며 격식을 차려야 하는 분과의 여행이 아니라면 어느 곳을 가든 후회하지는 않을 음식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대부분 반응이 심드렁하지만 제주도 해장국은 다르다. 적어도 한 번은 경험해 볼만한 음식 중의 하나다.
업무와 관련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기본적인 인수인계과정 없이 자리에 앉고 보니 직책은 비서실장이었으나 실질적 역할에서는 비서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홍보실장 겸직 발령이었으나 따로 별도의 직원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케팅이나 홍보에 관해 공부를 단 한 번도 따로 공부를 한 적 없는 홍보실장이다 보니 대학병원의 홍보조직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에 관한 개념도 없었다.
월 1회 발행하는 병원소식지 발행과 학술지 발행을 하며 의료계 내의 전문지 기자들을 만나고 가끔 일간지와 방송의 건강 담당 기자들과 안면을 익히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일 년이 지나갔다. 1992년 3월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세상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병원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밤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틀림없는데 아무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간이식에 성공했다는 말이 들려오고 곧이어 담당 교수가 전화를 했다. 이 사실 보고하고 혹시 언론에 흘러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한다. 당시 나는 아직 간 이식 성공이 의학적으로 어떤 의미였는지 몰랐을 때였다. 결국 김해의 인제대학교에서 집무 중이던 총장과 간이식 집도 교수와 통화가 이루어지고 곧 채 열 줄도 안 되는 보도자료를 받았다. 육하원칙에 충실한 자료였다.
이 자료의 핵심은 뇌사자의 간을 성인 말기 간암 환자에게 이식했다는 내용이었다. 주요 일간지와 방송의 건강의학담당 기자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첫 보도 이후 언론 앞에 나서기를 원하지 않던 집도의 이혁상 교수와 왕희정 교수 그리고 마취과 조강희 교수는 당시 인제대학교 백낙환 총장의 강력한 설득으로 기자회견 형식으로 간이식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간이식 성공은 외과의사 두 사람의 역량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과와 마취과를 포함해 전 진료과의 전문 의사는 물론 중환자실 간호사까지 오랜 기간에 걸친 공동연구와 훈련의 결실이다. 또 뇌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장기를 기증한 환자 가족과 간이식을 받기로 결정한 환자와 그 가족에게도 감사한다. 앞으로 장기 이식이 질병 치료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기를 희망한다.
1992년 3월 서울백병원 외과 이혁상, 왕희정, 마취과 조강희 교수팀이 국내 최초로 성공한 성인 말기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뇌사자 간 이식은 우리나라 장기이식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이후 서울백병원에서는 당시 미국피츠버그대학병원에서 연수중이던 외과 백계형 교수가 간이식수술에 합류해 총 8 건의 간이식이 추가로 이루어졌다.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숲길은 단연 사려니숲길이다. 본래 사려니숲길은 제주시 조천읍 봉개동의 비자림로에 있는 숲길 입구에서 출발해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의 사려니오름까지의 15 킬로미터 숲길을 말한다. 최근에는 비자림로의 숲길 입구에서 물찻오름과 붉은오름을 거쳐 남조로의 붉은오름 사려니입구까지 약 10 킬로미터의 길을 통상 사려니숲길로 부른다.
사려니의 뜻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하나는 ‘사려니’가 '실 따위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동그랗게 포개어 감는다'는 의미의 제주어인 ‘ᄉᆞ려니’로 보는데 사려니오름 정상에 거대한 바윗돌이 돌아가며 사려 있기에 '사려니오름'이라 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사려니’가 '살안이' 혹은 '솔안이'에서 왔으며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의 산명에 쓰이는 말이므로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제주의 오름 이름은 그 뜻을 풀 수 없는 경우가 꽤 있으므로 ‘사려니오름’의 정확한 뜻풀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사려니숲길의 가장 큰 장점은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이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위치와 길 안내 및 숲 해설표지판이 곳곳에 있어 안전하기까지 하다.
서귀포시 남조로의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 주차장엔 연중 계절과 요일을 가리지 않고 늘 렌트카와 관광버스가 북적인다. 넥타이를 매고 고급 구두를 신은 복장으로도 단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울창한 삼나무 숲이 호위하며 짙은 그늘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길은 시멘트 또는 다른 재질로 포장되어 있으니 세상 어디를 가도 이렇게 편하게 깊은 숲속을 걸을 수는 없다.
이곳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개 삼나무 조림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길을 걷는데 멀어야 왕복 1.5킬로미터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사려니숲길을 가 본 적이 있다며 울창한 삼나무숲길을 이야기 하는 이유다. 그러나 편도 10 킬로미터의 길을 다 걸으면 그들이 본 삼나무숲길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길인지 알게 된다.
가끔은 사려니숲길에 대해 전혀 다른 길을 걸은 듯 숲속 오솔길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숲속 오솔길에 인기척이라곤 없는 호젓한 길이라고 한다. 절물오름 입구 근처의 사려니숲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내도에 따라 사려니숲길 입구까지 2.5 킬로미터의 조릿대숲길을 걸은 경우다.
사려니숲길 걷기의 참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제주시 봉개동 남조로의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좋다. 이곳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걸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 중산간지대의 자연림을 먼저 만나면서 제주 숲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삼나무 숲과 자연림이 혼재되어 있는 입구에서 걷기 시작해 150미터쯤 가면 좌우에 자연림이 나타나면서 ‘새왓내 숲길 순환로’ 안내표지가 보인다. 무시하고 그대로 직진하기엔 이 1.5 킬로미터의 이 순환로가 너무 매력적이다. 좌로 돌든 우로 돌든 야자매트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면 누구든 걷기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숲 속 깊은 곳을 바라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살피기도 하며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처음 보는 작은 풀에 잠시 정신을 빼앗기기도 한다. 보라색 투구꽃, 옛 왕관의 깃을 닮은 포자낭을 키운 고사리삼, 한여름에 꽃을 피웠던 붉은사철란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숲에서 이들을 만나면 모르는 새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까지 10 킬로미터를 걸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오솔길은 없다.
가슴벅찬 오솔길을 돌아 다시 원래 서 있던 곳에서 넓은 신작로 길을 걸었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해 장승처럼 우뚝 멈추었다. 저 앞에서 노루가 펄쩍 뛰어 나와 길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얼떨결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노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숲으로 들어갔지만 멀리 가지는 않고 그저 태평스럽게 나뭇잎을 뜯고 있었다. 이 숲의 주인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었다.
물찻오름 입구까지는 4.5 킬로미터를 걷는다. 물찻오름의 정상까지는 채 1.5 킬로미터가 되지 않지만 10여년째 탐방로 자연회복을 위한 자연휴식년제가 시행중이어서 특별한 경우 외에는 개방되지 않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31일 이후에 개방될 것이라 하지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성판악으로 가는 길과 사려니오름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모두 막혀 있어서 생각 없이 걸어도 붉은오름 사려니숲길 입구까지는 길을 잃을까 염려할 필요도 없다.
물찻오름 입구를 지나 2킬로미터쯤 가면 월든삼거리 삼나무숲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삼나무숲이 이어진다. 한여름이라면 길가의 수국이 삼나무 숲보다 훨씬 아름다운 길이다. 삼나무 숲 사이를 지나는 넓은 길이 비록 수국이 수를 놓고 있지만 단조롭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숲속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미로처럼 보이는 컴컴한 이 길이 있어 사려니숲길이 덜 지루하다. 삼나무 숲 속엔 눈에 띠는 풀과 꽃이 거의 없다. 떨어진 작은 삼나무가지들이 표면을 두툼하게 덮어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걷다보니 조금의 휘어짐도 없이 수직으로 쭉쭉 뻗어 오른 삼나무도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려니숲길은 크고 넓은 길만 걸어서는 숲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없다. 새왓내 숲길 순환로와 삼나무 숲속의 미로숲길 등의 샛길에서 숲의 평화와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햇빛 한 줄기 들지 못하는 숲 속에서도 풀과 나무는 새로 싹을 틔우며 숲의 주인이 될 날을 기대한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